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가 확산되면서 자금 도피처로 각광을 받아온 영국 길트(국채)와 파운드, 일본 국채가 안전자산의 지위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는 경고가 속출하고 있다.
심각한 국가채무 부담 때문에 일찌감치 신용등급이 강등된 일본이 5년 내 디폴트(채무불이행)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한편 유로존 재정위기에서 한발 물러서 있는 영국도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는 등 스스로 안전자산으로서의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 영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과 파운드화가 국가채무 문제와 그리스ㆍ스페인 재정위기 등이 겹치면서 안전성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지난 4일 1.524%까지 하락해 영국 국채시장이 열린 1703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7거래일 만에 0.226%포인트 급등한 1.750%으로 뛰어오르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핸더슨글로벌인베스트먼트의 캐빈 애덤스 전략가는 "길트의 매도세가 다른 국채들에 비해 적긴 하지만 다른 국가들보다 위험성이 조금 낮다는 것이지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국채 가격 하락은 파운드화 가치 하락과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이다. 지난달 15일 1파운드당 1.26유로까지 가치가 올랐던 파운드화는 한달 사이 2.4% 하락한 1.23유로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면 앉은 자리에서 환차손을 보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가들이 국채시장에서 일부 이탈하고 있는 것.
현재 시장에서는 유로존 재정위기가 더 확산될 경우 영국도 그 여파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영국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8%를 웃돌아 GDP 대비 비중으로 독일의 3배에 달한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영국과 유로존 사이의 교역량이 10%씩 줄어들면 영국 GDP가 1%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산했다.
모건스탠리의 통화전략가인 이언 스태너드는 "파운드화가 안전자산으로서의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며 "그리스 재총선 이후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가 현실화하면 파운드가 다시 안전자산으로 부각될 수도 있지만 반짝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도 천문학적인 국채 부채 때문에 향후 5년 이내 디폴트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미국의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의 고문 역할을 했던 다케시 후지마키는 1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엔화와 일본 국채는 거품이 낀 상태"라며 "유럽 재정위기가 디폴트를 일으키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일본이 디폴트를 선언할 경우 현재 달러 대비 80엔대에 거래되는 엔화값이 400~500엔대까지 절하될 수 있고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도 80% 이상 상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일본의 GDP 대비 정부 채무는 236%로 재정이 파탄 난 그리스보다 훨씬 높고 미국이나 독일과 비교하면 약 두 배에 달한다.
현재 미국 국채와 더불어 최고의 안전성을 자랑하는 독일 국채도 수익률이 오르면서 안전자산으로서의 위상에 금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