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잠수' 를 아시나요?

퇴근 중인데 오랜만에 친구 A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소위 ‘잠수’ 중인 친구였다. ‘잠수’란 금융기관이나 개인들의 빚 독촉에 쫓겨 모든 연락을 끊고 말 그대로 잠수해 숨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5~6년 만에 만난 그는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고 자신의 근황을 소개했다. 과거에 비해 오히려 얼굴은 밝아 보였다. 그는 서울에서 전문대학을 나와 오랫동안 장안평 중고차시장에서 중개인으로 살아왔다. 그러면서 결혼도 하고 예쁜 딸도 낳았다. 그러다 중고차 경기가 전체적으로 침체되면서 어려워져 결국은 잠수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가정도 깨졌다. 선배 B. 이 선배도 잠수다. 그러나 이 선배는 십여년째 얼굴도 보지 못했다. 서울의 괜찮은 대학을 나와 역시 괜찮은 증권사에서 한때 잘나갔지만 주식으로 크게 망가진 후 재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주가가 1,000포인트를 넘은 지 한참이 됐는데도 소식이 없다. 친구 C. 전 펀드매니저다. 괜찮은 투신운용사의 펀드매니저로 잘 나가다가 코스닥 등록추진 업체로 자리를 옮겨 성공적으로 상장등록(IPO)을 마쳤다. 그러나 몇 달 후 상장등록 과정에서 있었던 문제가 뒤늦게 밝혀져 곤혹을 치르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그 후 몇 년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친구 D. 그는 고등학교 교사다.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이다. 그러나 그는 최근 월세 아파트로 집을 옮겼다. 부인이 몸이 약해 병원비로 많은 돈이 들어가다 보니 집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꿈은 정년까지 잘리지(?) 않고 다니는 것이다. 과거의 잣대로 볼 때 이들은 모두 우리 사회의 중산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자질과 능력, 학력을 갖춘 이들이다. 그러나 한두번의 실수나 혹은 상황이 이들을 어려운 처지로 빠져들게 했다. 과거 같았으면 이정도 어려움은 새롭게 일자리를 얻거나 기회를 잡음으로서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성장률과 성장잠재력이 추락하면서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양극화는 먼 곳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나의 이웃, 친구, 아니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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