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겉 다르고 속 다른 주택시장


과일을 상자째 살 때 유념해야 하는 것이 있다. 윗면에 보이도록 진열된 실하고 때깔 좋은 과일뿐 아니라 상자 아래쪽에 보이지 않는 과일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것을 잊어버리고 사고 나서 바닥 쪽 과일을 살핀다면 때는 이미 늦다.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하더라도 시간, 교통비, 감정적 마찰 등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최근 주택시장은 일부 총량적 지표가 증가세를 보여 시장 회복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총량적 지표만 좋은 것인지 아니면 숨겨진 바닥시장도 살아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것 같다. 거래 늘었지만 저가매물 위주 먼저 윗면에 드러나는 총량적 지표를 보자. 올해 상반기 주택 인허가실적은 지난해보다 60% 증가했다. 기존 주택의 거래량도 최근 5년 평균보다 27% 증가했다. 지방에 한정된 상황이 아니라 가격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수도권의 상황도 유사하다. 민간 인허가가 예년보다 증가하고 거래량도 최근 5년을 웃도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회복세를 나타내는 총량적 지표와 시장의 속사정도 같을까. 인허가실적은 공급의 양적 지표다. 회복은 이러한 양적 증대가 판매로 이어질 때 이뤄진다. 그런데 수도권 미분양 주택은 지난 5월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6월에는 지방에까지 증가세가 확대됐다. 주택공급이 양적으로는 증가하지만 팔리지 않고 오히려 쌓이고 있다는 말이다. 인허가도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완연한 증가세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수도권 아파트의 인허가 대비 착공 실적은 78%에 불과하다. 인허가 물량 중 20% 이상이 인허가만 받고 착공ㆍ분양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체 주택으로 범위를 넓혀도 인허가 건수의 15%가 착공하지 않고 있다. 금융비용 등을 고려할 때 인허가 이후 착공ㆍ분양이 늦어질수록 수익성이 악화되는데도 주택경기가 좋지 않아 착공을 미루거나 아예 토지대금에 대한 금융조달 또는 사업장 매각을 목적으로 인허가를 받은 물량이 적잖은 셈이다. 이에 따라 인허가에서 입주까지 걸리는 기간도 종전의 3년 안팎에서 훨씬 길어지는 등 공급시장의 패턴 변화 가능성도 높아졌다. 기존 주택시장의 총량적 지표라 할 수 있는 거래량도 이례적 증가세다.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이 전년보다 64% 증가해 가격침체를 고려하면 회복 징후로 판단할 개연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서울과 인천의 거래량은 여전히 감소세로 수도권 전역의 증가세는 아니다. 또한 거래량 증가가 가격 상승세를 견인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각국의 주택 거래량은 가격이 상승할 때 증가하는 패턴을 보여왔다. 이는 주택시장뿐만 아니라 주식 등 대부분의 자산시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결국 상반기 거래량 증가는 저가 매물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허가 증가도 침체의 한 단면 거래시장의 침체는 이미 2007년부터 장기화됐고 주거이동 및 처분을 더 미룰 수 없는 세대들이 일부 거래량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저가 매물이나 주거이동, 처분연기가 어려운 세대들이 소진되고 나면 거래량 증가세 유지를 위한 동력은 강해질 것 같지 않다. 상반기 주택시장의 총량적 지표 중 일부가 회복 징후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인허가 증가세가 오히려 침체의 또 다른 단면일 수 있다. 주택시장은 변화하고 있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뿐 아니라 세부적 시장상황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낙관적으로 총량적 지표 증가를 회복의 신호로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상자째 사과를 살 때의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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