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56ㆍ사진) 금융감독원장은 "유가급등이 계속되고 유럽발 위기 등 대외환경 불안이 이어지면서 자영업자와 집값(부동산), 다중채무자 등 3대 부문이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며 "정책적 역량을 이 세 가지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둔화나 유가상승이 금융부실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권 원장은 특히 "과도한 집값 하락은 금융회사들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안정적으로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 원장은 대출사기ㆍ보이스피싱ㆍ보험사기ㆍ테마주 등 4대 금융범죄에 대해 "최근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영화도 흥행하고 있지만 금융범죄 역시 범정부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좀 더 강력한 대처를 위해 검찰ㆍ경찰과 관계기관 합동대책반을 꾸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 원장은 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올해는 어느 해보다 서민들의 자금난이 가중될 수 있다. 각종 수수료 등 서민 부담을 늘릴 수 있는 불합리한 체계를 수술하겠다"면서 이 같은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금융시장 리스크 주시
요즘 금융당국의 최대 고민은 가계부채다. 금융회사 대출규제로 대출공급은 줄였지만 수요가 여전하다는 게 문제다.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경기 활성화다. 경기가 되살아나면 가계의 실질소득이 증가해 대출수요가 자연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이와 정반대다. 유럽발 재정위기 등의 여파로 경기둔화가 지속되고 물가는 오르다 보니 실질소득 감소→대출증가→빚 상환부담 가중→소득감소의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가계부실은 금융회사의 건전성 악화로 직결된다. 권 원장이 가장 우려하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자체적으로 파악해본 결과 금융 부문의 위험요인은 자영업ㆍ다중채무ㆍ집값하락 등 세 가지"라고 우려했다.
이 정도 경고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을까, 아예 수첩까지 꺼내 들고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했다. "최근 자영업자의 금융부채 증가율은 20%로 임금근로자(12%)의 두 배에 육박합니다. 자영업자의 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중도 170%에 달합니다. 100% 안팎인 임금근로자보다 월등히 높아요."
권 원장이 자영업자를 예로 든 것은 이들이 첫번째 리스크 요인인 경기위축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는 "550만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들이 적자를 빚으로 메우며 연명하는 상태"라며 "경기가 더 안 좋아져 매출이 줄거나 유가상승으로 원가부담이 커지면 자영업자가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이는 곧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금융회사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중채무 문제에 대해서도 권 원장은 "은행에서 돈을 빌린 사람 가운데 27%가량은 카드사ㆍ저축은행ㆍ대부업체 등 제2금융권에서도 빚을 진 것으로 파악된다"며 "특히 7~10등급 저신용자들의 상당수가 다중채무를 지고 있고 연체율도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마지막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한 부동산 가격에 대해서도 우려를 쏟아냈다.
"집값이 하락하면 거래가 늘어야 하는데 오히려 줄고 있어 걱정이에요. 거래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부동산 체감경기가 심각하다는 방증입니다. 집값이 하락하면 금융회사, 특히 2금융권의 대출이 부실화할 수 있는 만큼 집값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권 원장은 다만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등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부동산 경기를 띄우기 위해 DTI를 활용하는 것은 적절한 정책대응이 아닙니다. 가뜩이나 가계부채 문제가 잠재위험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는 마당에 DTI 완화는 정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금융범죄, 범정부 차원에서 상시 대응해야
이쯤에서 금융범죄로 화제를 돌렸다. 금감원은 최근 대출사기ㆍ보이스피싱ㆍ보험사기ㆍ테마주를 4대 금융범죄로 규정하고 조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보험사기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데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최근 들어 만연되고 있고 보이스피싱은 날이 갈수록 범죄수법이 지능화ㆍ고도화해 걱정입니다. 수사기관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예요, 또 금융회사 대출규제 강화 이후 돈 구하기 어려운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사기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있으니 테마주도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겁니다."
그는 4대 금융범죄에 대한 상시적 감시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지금도 검찰ㆍ경찰과 협조하고 있지만 좀 더 강력하게 대처하려면 관계기관 합동대책반을 꾸리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총리실에서도 서민금융 범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요."
노태우 정부가 조폭소탕을 내세우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공권력을 총동원했듯이 금융범죄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전쟁이라도 불사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테마주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를 강조했다. 그는 "테마주를 띄운 작전세력에는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해 시장에 '경고'를 보내겠다"고 말했다.
서민금융 불합리한 금리체계 추가로 손볼 것
권 원장은 금융회사를 이용하는 서민층이 피부로 느끼는 불합리한 금리체계나 관행도 지속적으로 손볼 계획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불합리한 각종 금융제도와 관행 119건을 개선해 전년(109건)보다 처리건수가 늘었다.
" 불합리한 금리체계를 바꾸는 등 금융보호자 권익보호를 위한 장치들을 추가로 내놓을 계획입니다. 금융회사의 자발적인 소비자 보호와 금융소외 계층에 대한 혜택 등도 적극 유도하려 합니다."
지난해 은행들은 500억원을 신용회복위원회에 출연, 소액자금 대출재원 기금을 조성했다. 새희망홀씨 공급목표도 지난해 1조2,000억원에서 올해 1조5,000억원으로 증액했고 은행권의 사회공헌활동 사업 예산도 지난해 6,800억원에서 올해 1조원으로 커졌다.
금융회사들 과열경쟁 조짐 경고
하지만 금융회사들에 대한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최근 외환은행을 인수한 하나금융지주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농협금융지주 등 금융지주회사 출범으로 금융소비자 권익 보호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요즘 금융회사들 사이에 외형확대 경쟁이 과열되는 조짐이 있습니다. 무리한 고객확보 경쟁은 불완전판매 등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권 원장은 특히 새로 출범한 농협보험에 대해 "설계사 스카우트, 계약유지 문제 등으로 과열경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같은 줄기에서 금융사들의 내부 부당거래에 대해서도 우려를 드러냈다.
"대기업 계열인 보험회사와 증권사 등의 계열사에 대한 우회적 자금지원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퇴직연금 계열사 몰아주기, 계열 자산운용사의 펀드 몰아주기 등 다양한 유형의 불공정거래 행위가 발생하고 있어요. 금융회사의 부당 내부거래를 올해 주요 기획ㆍ테마 검사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습니다. 특히 계열 소속 보험회사나 증권사ㆍ자산운용사ㆍ여신전금융회사는 집중적으로 검사할 생각입니다. 관련부서에서 세부 검사계획을 수립하고 있고 이미 일부는 지난달 실시했습니다."
질문은 자연스럽게 대형 대부업체들의 영업정지 문제로 이어졌다.
최근 러시앤캐시 등 대형 대부업체 네 곳이 강남구청의 영업정지 처분에 대해 집행정지 등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실제 영업정지까지 다소 시간을 번 것이다. 권 원장은 대부업체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위험성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업체가 긍정적인 측면이 많지만 빚 권하는 사회에 일조했다는 점은 부정적입니다. 젊은 층이 쉽게 돈을 빌려 쓰고 이를 부모가 갚아주는 구조가 되면 문제가 있습니다."
취임 1주년 "금감원이 금감원다워지고 있다"
권 원장은 오는 26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취임하자마자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 등으로 금감원이 표적이 됐다. 최악의 위기상황에 등판한 권 원장이 금감원 위상 회복을 위해 선택한 해법은 '기득권 포기'다. 그가 최근 신한은행 측에 퇴직한 금감원 출신을 감사로 선임하지 말라고 요청한 것 역시 기득권 포기를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감사의 경우 대형은행으로서 시장의 관심이 높고 금감원에 대한 비판여론이 형성될 가능성이 매우 커 퇴직한 직원이라도 선임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중소형 금융회사가 금감원 출신으로 전문성이 담보된 퇴직인사를 선임하는 것을 일일이 막을 수야 있겠습니까."
스스로는 지난 1년간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할까. 권 원장은 테마주에 대한 불공정거래 조사 등을 예로 들며 "요즘 들어서야 금감원이 금감원다워지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는 "세무조사가 제대로 이뤄져야 성실납세가 실현되는 것처럼 철저한 검사와 조사가 뒷받침돼야 감독도 수월하게 이뤄진다"며 "불공정행위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고 위법행위에는 가차없이 일벌백계해 시장의 규율을 확립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장경험을 그렇게 강조했는데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이 같은 사과발언으로 최근 마그네틱카드의 IC카드 전환과정에서 벌어진 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국민들에게 불편을 끼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질타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묻어났다. 그는 "마그네틱카드를 IC카드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사용제한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준비를 소홀히한 측면이 있었다"며 "대통령이 평소 '현장'을 누누이 강조했는데 이번에는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을 세밀히 챙기지 못했다"고 했다. 금감원은 지난 2일 영업시간 중 자동화기기(CDㆍATM)에서 마그네틱카드를 통한 현금인출과 계좌이체를 할 수 없도록 일부 사용제한 조치를 취했다. 불법복제 위험이 큰 마그네틱카드 사용을 차단하기 전에 IC카드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사전조치였다. 사용제한 조치를 실시하기 전에 금감원은 여러 경로로 대국민 홍보활동을 벌였다. 지난해부터 금융회사에 IC카드 전환을 촉구하도록 e메일을 보내라고 지시했고 각 금융회사 홈페이지에도 관련내용을 게시하도록 하는 등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사용제한 첫날인 2일부터 현금을 인출하지 못하게 된 마그네틱카드 사용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은행들도 마그네틱카드를 대체할 IC카드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고객들의 원성을 샀다. 이른바 '탁상행정'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권 원장은 "(실무진에게) 국민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하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이런 혼란이 올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며 "비용이 들더라도 좀 더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IC카드 물량부족에 대해서도 "평소 '은행들의 말만 믿지 말고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해보라'고 강조해왔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책은 '이론'이 아니라 '감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책상머리에서 만들어낸 화려한 정책보다 정책실행 과정에서 국민들이 겪을 불편이 무엇인지 감각적으로 짚어낼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co.kr ◇ 약력 ▦1956년 대구 ▦1980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98년 미국 밴더빌트대 경영학과 석사 ▦1979년 행정고시 23회 ▦2000년 재경부 금융정책과장 ▦2004년 재경부 재산소비세제심의관 ▦2007년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 ▦2009년 금융위 부위원장 ▦2011년 금융감독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