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세율을 몇% 낮추거나 높이는 게 지금 할 일은 아닙니다. 불필요하게 깎아준 세금부터 제대로 걷도록 해야 합니다.” 참여정부의 조세정책 전반에 걸쳐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최용선(사진) 한국조세연구원 원장. 그는 해마다 선거철이면 되풀이돼온 근로소득세 조정방안을 이처럼 평가했다. 최 원장은 지난 8월30일 이뤄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2006년 세제개편안에 대해서도 아쉬운 점이 많았음을 서슴없이 밝혔다. 최 원장은 정부의 근로소득장려세제(EITC) 도입도 어려움을 많이 겪을 것으로 내다봤고, 최근 논란이 된 골프장 회원권 재산세 과세는 당장 도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원장은 특히 정부가 최근 발표한 ‘비전2030’ 과 관련된 재원 마련에 대해 “국가 부채를 무한정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민의 조세 부담률이 어느 정도 늘어나는 게 불가피하다는 점을 내비치기도 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비전2030을 놓고 세금을 더 걷자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습니다. 재원마련 수단에 대한 논란도 많은데 어떤 방안이 적절하다고 보십니까. ▦사실 재원마련 방안은 세 가지밖에 없습니다. 세금을 더 걷든가, 국가 부채를 늘리든가, 아니면 재정구조를 바꿔 경제지출을 줄이고 복지지출을 늘리든가 하는 거지요. 일부를 선택하거나 적절히 정책조합(policy mix)을 해야 합니다. 재원을 전부 국채로 충당하면 현재 30% 수준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오는 2030년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인 70%가 됩니다. 전부 세금으로 충당하면 현행 GDP 대비 20%인 조세부담률이 22% 정도 오릅니다. 결국 국민적 합의로 결정할 사안이 되는데, 세금부담이 2%포인트 올라도 대포적인 복지수준 향상에 국민들이 동의한다면 추진이 가능할 것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했던 건 재정건전성이 좋았던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도 선진국보다는 상황이 좋지만, 이제 우리 경제는 대외여건의 영향을 크게 받는 개방경제가 됐습니다. 앞으로도 외환위기와 유사한 상황에 대응하려면 규모가 더 큰 나라보다 국가부채 등 빚을 덜 지면서 재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 최근 발표된 올해 세제개편안을 놓고도 논란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소수 추가 공제 폐지 여부를 놓고 맞벌이ㆍ독신 등 1~2인 가구의 부담만 늘린다는 비난도 있는데요. ▦그 부분은 좀 달리 봐야 합니다. 원래 소수 추가 공제제도는 뚜렷한 이론적 근거나 경험도 없이 대충 끼워 만들어 넣은 제도였습니다. 과거 공제니 비과세니 하는 것들이 난삽하게 늘어나는 과정에서 ‘맞벌이나 혼자 사는 가구도 좀 집어 넣어주자’고 해서 생긴 제도인데 이제 이를 정상화하자는 것뿐입니다. -과거 수 차례 세제개편 작업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분이 비과세 감면제도입니다. ▦감면을 요구하는 이들은 자신의 이익이 걸린 문제라 이에 적극적인 데 반해 재정경제부 등 조세정책 담당 부처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은 탓에 이를 추진하는 강도가 좀 낮습니다. 여기에 수많은 세금감면 건의들이 때만 되면 슬그머니 의원입법으로 추가됩니다. 올해 각 부처가 요구한 감면건의와 의원입법안이 모두 몇 건인지 아십니까. 무려 181건입니다. 다 통과되면 20조원의 세수가 줄어듭니다. 제 생각에는 일몰이 예정된 제도는 반드시 당해 연도에 끝을 내는 게 먼저라고 봅니다. 아울러 국회나 정부와는 독립된 별개의 위원회도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비과세 법안을 스크린하고 감시하는 거지요. 또 그해에 깎아줄 세금의 전체 한도를 미리 정해놓고 모든 법안이 한도 안에서 논의하도록 할 필요도 있습니다. 조세연구원이 초안을 내놓은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의 핵심적인 내용도 이 같은 비과세 감면제도를 대폭 축소하는 일입니다. -좀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예년에도 이슈화된 적이 있지만 현재 8~35%로 4구간으로 나뉜 근로소득세 개편안이 또 한번 도마 위에 오를 전망입니다. 반발과 찬성의 목소리가 엇갈리는데 원장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최저세율을 낮추거나 혹은 현재 35%인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리거나 하는 방안 모두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국내 소득세제는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점 수준이 높아 소득 있는 이들의 절반이 면세자입니다. 이 판국에 세율을 더 내리면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재원 확보마저 어려워집니다. 또 소득세 최고세율 수준도 우리나라(35%)가 미국(35%), 일본(37%)보다 크게 낮지 않습니다. 국제비교로는 최고세율 인상 아이디어가 정당성이 없지요. 게다가 전체 소득세수 가운데 고소득층이 부담하는 비중도 우리나라와 미국이 유사합니다. 결국 단기적으로 세율인상을 추진할 이유가 많지 않습니다. 지금은 세율을 조정하기보다 좁은 과세기반을 확충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우선 사업소득자의 소득파악률을 높이고 난삽한 비과세 제도부터 정비해야 합니다. -정부가 약속한 EITC에 대한 궁금증과 걱정도 높습니다. 재원 문제, 소득파악 문제 등으로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 우려됩니다. ▦저는 수 차례 EITC 도입 논의과정에서 “시행 이전에 많은 실험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제도를 먼저 시행한 미국의 경우만 해도 2000년 EITC로 저소득층이 과다하게 청구한 금액이 전체 요구액의 딱 3분의1에 달했습니다. 소득파악률이 높은 미국이 저 정도인데 소득파악 인프라가 낮은 한국은 오죽하겠습니까. 게다가 제도가 잘못 시행되면 반발도 즉각적으로 나올 겁니다. 예를 들어 동일한 소득을 내는 두 가구가 있는데 한쪽이 다른 쪽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세금지원을 받는다 쳐보세요. 당장 ‘옆집은 이만큼 지원받는데 우리 집은 이것밖에 안 나오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그만큼 골치 아픈 제도입니다. 저는 그래서 “차라리 제주도에서만 별도로 먼저 이 제도를 실험해보자”는 의견까지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복지 쪽에 포커스를 맞춘 학자들은 정책효율성보다 정책 목표에 더 주안점을 두다 보니 지나치게 밀고 나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정부가 EITC 적용범위를 상당히 축소하면서 서서히 시행하려고 해 좋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봅니다. -최근 행정자치부가 골프 회원권에 재산세를 부과할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중과세 우려와 함께 무형의 권리에 재산세를 부과하는 점이 위헌이라는 반발도 높습니다. ▦재산 보유세는 원칙적으로 유형자산과 무형자산 모두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보유세가 잘 발달된 미국의 지방세제를 살펴보면, 무형자산의 일종인 주식(stocks), 뮤추얼펀드, 유한책임회사의 지분, 채권, 어음 등 다양한 금융자산에 보유세를 부과합니다. 그러나 여러 종류의 무형자산 중 유독 골프 회원권에만 세금을 매긴다는 논리는 다소 궁색할 수 있습니다. 결국 골프 회원권 과세 여부를 논하기 전에 무형자산 전반에 관한 과세체계의 검토가 선행돼야 하는데 이는 법률 및 경제적 타당성 검토 등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됩니다. 순서로만 보면 단순히 골프장 회원권만을 대상으로 지금 과세 여부를 논의하기는 어렵습니다. - 세금제도의 문제점을 꼽을 때 항상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세원 파악이 지적됩니다. 이 점이 부족해 과세 당국은 ‘월급쟁이 세금만 거둬간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제도 입안자나 행정 실무자, 조세 연구자들이 굉장히 고심하는 부분인데요. 여기에는 납세의식의 부족과 저조한 소득파악 문제가 엉켜 있습니다. 우선 국내 소득파악률이 불과 50~60%에 불과합니다. 미국은 80%가 넘지요. 국민의 절반 정도만 제대로 세금을 낸다는 얘기인데요. 그러면서도 우리 국민들 상당수는 ‘내가 낼 세금이 아닌데 남들이 세금을 좀 떼어먹어도 별 신경을 안 쓴다’고 생각합니다. 탈세범죄를 저질러도 욕을 먹거나 손가락질당하지 않고, 때로는 동종업계에서 세금 잘 내는 사람이 지탄과 ‘왕따’의 대상이 되기까지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조세정책 전반에 대한 조언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선 우리 국민들 먼저 탈세가 병역기피와 유사한 범법행위이며, 결국 다른 납세자들이 이를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는 점을 체감해야 합니다. 때로는 정책 결정자들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거칠게 세금 문제를 다루는 모습이 보입니다. 조세에 전문적 지식을 가지지 않은 이들이 조세와 관련된 주요 국가정책을 직접 다루기 때문이지요. 정부는 세금정책을 수립할 때 모든 단계에서 마치 갓난아이를 다루듯, 뇌신경외과 의사가 환자를 수술하듯 세심하고 조심스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정책을 강매하던 수준의 판매전략과 마인드로 조세정책을 펼 때가 아니라, 마케팅 개념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할 시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약력 ▦49년생 ▦74년 연세대 정외과 졸업 ▦89년 미국 플로리다 인터내셔널대 경영대 교수 ▦99년 재정경제부 세제발전심의위원 ▦2002년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 세무학과 교수 ▦2004년 6월 제7대 한국조세연구원 원장 ● "중장기 조세개혁안 靑에 빨리 공개하자 했다"
지난해 1월 대통령에 보고… 매번 정책추진 타이밍 놓쳐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을 빨리 공개하자고 청와대 등에 요청했었습니다. 전체 방안을 공개하면 논란의 소지도 없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하지만 너무 조심스러워했습니다." 정부가 세제 선진화 차원에서 추진해오다 지방선거 등을 의식해 작업을 뒤로 미룬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과 관련해 최용선 원장은 이같이 밝혔다. 당초 조세연구원이 초안을 마련해 정부 측에 보고했지만 결국 여러 사정을 감안하다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1월24일 정부혁신위원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조세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으며 초안을 만들었다"며 "당초 내 생각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까지 필요한 입법을 완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원장은 이어 "참여정부 임기 내에서 완료되지 못할 안건들이 있다면 이는 별도 자료로 남겨 계속 추진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 원장은 "8ㆍ31대책과 올해 지방선거 등이 겹치는 과정에서 매번 정책추진의 타이밍을 놓쳤다"며 "이 과정에서 수 차례 너무 여론을 의식하지 말고 서둘러 공개하자고 청와대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개혁안이라고 해도 모든 사안을 오픈해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도록 하면 국민적 합의를 쉽게 끌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며 "(당시) 지방선거도 이미 참패로 결정났는데 더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수개월 전에도 청와대에 더 공개하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하지만 너무 조심스러워하고 있어 이제는 우리 손을 떠난 사안"이라고 말했다. 조세개혁 기본방침에 대해 그는 "세부적인 내용은 내가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자영업자 등에 대한 소득파악 제고와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비과세 및 감면 축소가 핵심 내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자율성을 높이는 내용도 담겨 있으며 아울러 납세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혁신안도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 EITC란?
저소득층 근로 장려위해 일정액 지급
내년부터 실시 예정…현금지원은 2008년께나 근로소득장려세제(EITCㆍEarned Income Tax Credit)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 저소득층의 근로를 장려하기 위해 일을 할 경우 일정액의 현금을 주는 제도. 일명 '마이너스 소득세'로 불린다. 저소득 계층이 스스로 생활여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근로의욕을 북돋워주고자 돈을 벌면 지원액도 그에 맞춰 늘리게 된다. 우리나라는 오는 2007년부터 실시할 예정이며, 지난해 소득을 신고한 후 지원액이 결정되는 만큼 실제 현금지원은 2008년께나 가능하다. 부부 합산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800만원 미만이면 근로소득의 10%가, 800만~1,200만원이면 일괄적으로 80만원이, 1,200만~1,700만원 가구는 1,700만원에서 실제 근로소득을 뺀 금액의 16%가 지원된다. EITC 지원을 받으려면 본인이 종합소득세 신고시기에 이를 직접 신청해야 하며 이때 소득뿐 아니라 부동산과 금융재산 상황 등도 확인돼야 한다. 지급액은 국세청에서 통장으로 계좌이체를 통해 1년에 한번 일괄 지급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문제는 저소득층에 대한 정확한 소득파악이 필요한데다 상당한 재원충당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자칫 실제 소득을 속여 지원금을 더 받아내는 경우도 생길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