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TPP부터 EAU까지… "경제영토 넓히자" 총성없는 전쟁

경제블록 다극화 시대 막 올랐다<br>EU·NAFTA·ASEAN 등 FTA 거미줄처럼 엮이며 경제권 합종연횡도 활발<br>美·日등 공조에 부담 中도 블록 주도 나설 듯



러시아의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요즘 유럽연합(EU) 등 거대 경제권에 맞서기 위해 옛 소비에트연방을 부활시키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옛소련에 속했던 국가들을 규합해 내년 1월 출범을 목표로 자유무역지대(유라시아공동체)를 출범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10월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에 기고한 발표문을 통해 유라시아연합(EAU) 설립구상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1년 전 러시아ㆍ벨로루시ㆍ카자흐스탄 등 3국이 맺은 경제공동체(CES)에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등 옛소련 국가들을 끌어들여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에 필적할 수 있는 경제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푸틴의 EAU가 오는 2013년까지 유로와 같은 단일통화를 도입할 가능성이 있으며 러시아가 이들 국가와 경제적 측면에서 일단 통합을 이룬 뒤 옛 소비에트연방 부활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과 일본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논의가 급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블록을 구성하거나 이를 강화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특히 무역전쟁시대를 맞아 주요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이 거미줄처럼 엮이면서 글로벌 경제블록 간 합종연횡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패권경쟁도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자유무역지대의 '공백지대'로 분류됐던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블록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일본이 미국과 밀착관계를 보임에 따라 상대적으로 FTA에 소극적이었던 중국도 겨울잠에서 깨어나 본격적인 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희토류 등 지하자원을 무기로 내세우기 위해 선진국과 자유무역에 관심을 두지 않던 중국 입장에서도 역내시장의 지배력을 높이려는 미국과 일본의 공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극화시대 맞는 경제블록=현재 배타적 자유무역권을 의미하는 주요 경제블록은 북미와 유럽ㆍ동남아ㆍ남미 등에 걸쳐 있다. 이들은 그동안 대륙별로 떨어져 각각의 독자적 영토를 구축해왔다. 하지만 태평양을 가로지른 TPP 출현이 임박한데다 경제블록 간 FTA도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어 본격적인 경제권 다극화시대 개막이 머지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블록의 원조로는 지난 1993년 11월 마스트리히트조약으로 출범한 EU가 꼽힌다. 현재 27개국이 가입해 있으며 이들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은 16조1,000억달러에 이른다. EU는 특히 경제블록 최초로 단일통화인 유로를 도입해 가장 긴밀한 통합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4년 1월 미국ㆍ캐나다ㆍ멕시코 정부가 상호관세와 무역장벽을 폐지하기로 하면서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경제규모가 17조2,700억달러에 달해 규모면에서 EU를 앞선다. 특히 TPP에 캐나다와 멕시코도 참가의사를 밝혀 NAFTA와 TPP가 하나로 묶인 초대형 경제블록이 출현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필리핀ㆍ말레이시아ㆍ싱가포르ㆍ인도네시아ㆍ태국ㆍ브루나이ㆍ베트남ㆍ라오스ㆍ미얀마ㆍ캄보디아 등이 가입한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도 주요 경제블록 중 하나로 분류된다. 아세안은 최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급속한 경제력 팽창에 힘입어 미국과 EU 등 관련국들의 러브콜을 한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개별국가 간 경제력의 편차가 워낙 커 개방 정도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편이며 최근에는 싱가포르ㆍ태국ㆍ베트남 등이 선진국들과 각각 FTA 협상에 나서 원심력이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2008년 5월 결성된 남미국가연합(UNASUR)은 최근 상호협력을 강화해나가는 모습이다. 8월에는 국제통화기금(IMF)과 비슷한 형태의 역내펀드인 라틴아메리카기금(FLAR)을 확대하기로 합의하는가 하면 상호무역에서 자국화폐 결제 비중을 높이기로 하는 등 양대 경제권에 맞먹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모습이다. 이밖에 페르시아만 연안 사우디아라비아ㆍ쿠웨이트ㆍ아랍에미리트ㆍ카타르ㆍ오만ㆍ바레인 등 6개국이 참여한 걸프협력회의(GCC) 역시 오일머니를 앞세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EAU도 푸틴의 강력한 카리스마 아래 서서히 모양새를 갖춰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신경제블록의 키를 쥐다=세계적으로 국가별 블록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최종적인 열쇠는 결국 중국이 쥐고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발판으로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위상을 굳힌 중국은 선진국과의 FTA에 소극적인 양상을 보였지만 역내 최대 라이벌인 일본이 미국 주도의 경제블록 안으로 뛰어들면서 긴장감을 높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중국의 향후 행보에 글로벌 경제의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중국 역시 어떤 식으로든 경제블록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이에 대해 "아시아 국가 입장에서 중국은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Room)'와 같은 존재"라며 "특히 아시아 무역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향후 중국 주도의 경제블록이 등장할 개연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지난해 FTA를 발효한 아세안 10개국과 한국ㆍ일본 간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통상방향을 잡고 있다. 여기다 참가국들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포위망을 뚫고 아태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과 일본의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5.1%와 19.4%로 대미 수출 비중(한국 10.7%, 일본 15.4%)을 모두 앞질렀다. 만일 중국이 역내 경제블록 구성에 나설 경우 여기에 참여하지 않으면 거대한 무역의 만리장성을 마주하게 되는 딜레마에 몰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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