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이어도까지 북상한 중국의 해양공정

2003년 해양기지 건설 없었다면<br>중국의 도발 생각만 해도 끔찍해<br>일본승인 없이 헬기 하나 못 보내<br>대선후보 해양 주권 책략은 뭔가


대한민국 남단 마라도에서 뱃길 따라 380리 지점에 '전설의 섬' 이 있다. 고기잡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어민들이 산다는 전설이 깃든 이어도다. 섬이라지만 사실 수심 4.6m에 잠긴 암초다. 상상의 섬이 명실상부한 대한국민의 관할에 들어온 것은 2003년 해양과학기지가 들어서면서다.

이어도 기지 구상은 처음에는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태풍의 길목에 자리 잡은 이어도 해역에 설치한 해양관측 부이(buoy)가 어망이 걸리거나 태풍에 유실되는 경우가 잦아 차제에 항구적 기지를 건설하자는 해양학자들의 소박한 제안이 출발점이다. 지정학적 중요성이나 전략적 개념에서 접근했던 것이 아니었다. 구상에 머물던 이어도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된 것은 1995년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본의 독도망언에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발언한 뒤 급 물살을 탔다. 이듬해 설계비가 예산에 반영되고 독도 접안시설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계기로 경계가 모호한 해양 영유권 문제에 비로소 눈을 뜨게 된 것은 아이러니지만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지금 이곳에 격랑이 일고 있다. 중국이 지난 3월에 이어 또다시 이어도를 자국 관할 해역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무인항공기를 띄워 감시하겠다고 한다. 의도는 뻔하다. 우리의 실효적 지배를 무력화하겠다는 속셈이다.


이어도가 여태껏 전설의 섬으로만 남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만해도 끔직하다. 중국이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하겠다고 선포한다면 혹은 중국 군함들이 이어도 해역을 제집 드나들듯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건가. 우리가 이제 와서 기지 건설에 나선다면 한중 관계는 또 어떻게 될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중국은 미국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고 우리 최대 교역상대국이다. 그런 중국에 'no'라고 단호히 맞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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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는 암초라서 국제법상 어느 나라의 영토도 아니다. 그러나 실효적 지배를 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주변 해역이 우리 관할 수역으로 들어온다. 중국과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경계선을 10년 넘도록 획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어도는 양국의 EEZ가 겹치는 곳에 위치한다. 대륙붕 광구도 중첩된다. 지정학적 중요성은 이런 경제적 득실을 뛰어넘는다. 이어도는 남방해역의 진출점이자 앞으로 뚫릴 북극해로의 길목이다.

독도에 비해 이어도 문제는 소홀히 다뤄져 왔다. 국민적 관심도 덜하다. 전설의 섬, 상상의 섬으로만 알려져 왔지 이어도에 헬기 하나 우리 맘대로 띄울 수 없다는 현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 내 포함돼 일본의 승인 없이는 공중접근은 원천 봉쇄돼 있다. 중국의 이어도 도발 뒤에는 1947년 국민당 정부시절부터 시작된 해양공정이 자리 잡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중국은 남지나해 영유권 범위를 이른바 '9단선(nine-dashed line)'이라고 해서 필리핀~베트남에 이르는 해역에 일방적인 선을 긋고 주변 국가들을 제압해왔다.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지만 해양 주권과 관할권에 관한 한 힘의 논리를 앞세운 게 중국이다. 대양해군의 초석을 다진 장쩌민 전 주석이 국제해양법과 국제통상법에 정통한 개인 교수를 두고 학습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국의 해양공정은 어느덧 남해까지 북상했다. 이어도는 더 이상 전설의 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 대중(對中) 태평양 봉쇄전략을 강화할수록 이어도 해역의 긴장감은 고조될 것이다. 미중의 해상 패권이 동북아에서 충돌하는 신 냉전의 마당이 이어도다. 새 정부가 들어설 즈음 동북아 질서는 주변국의 권력 교체로 요동칠 것이다. 중국은 더 강해지고 일본의 우경화는 가속화할 게 분명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대선 주요 후보들은 동북아 해양패권 경쟁에서 어떻게 활로를 모색할 것인가 그 답을 내놓아야 한다. 해상항로(sea route)는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는 생명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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