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세월호 침몰, 유씨 일가 사업 들여다보니] 신도의 힘? 계열사간 밀어주기? … 꼬리무는 '왕국재건 미스터리'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일가가 거미줄 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3일 인천지검 관계자들이 청해진해운에 대한 압수수색을 위해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인천=이호재기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지난 1999년 청해진해운을 설립하면서 시작된 왕국의 재건 과정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투성이 그 자체다. 유 전 회장은 종교적으로 인연을 맺은 '구원파' 등 개인주주들의 자금 34억원으로 청해진해운을 시작했다. 이후 청해진해운의 모기업인 조선업체 천해지를 구심점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지주회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를 설립하면서 선박·해운, 도료, 자동차부품, 유기농 제조업체, 영어교육, 인터넷 쇼핑몰, 건설 등을 아우르는 국내 30여개, 해외 13개 법인을 보유한 왕국을 건설했다. 유 전 회장 일가가 지배하는 왕국의 장부상 자산규모는 5,000억원 안팎이지만 실가격이 반영되지 않은 대량의 부동산, 은닉 의혹이 일고 있는 개인 소유 해외재산까지 합치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유 전 회장은 이 과정에서 계열사 간 거미줄 같은 지분출자 및 자금·담보 제공 등 밀어주기, 빈번한 증자 등을 통해 외형을 키워왔다. 적자 계열사들이 2,000억원대 국내외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도 밝혀졌다. 계열사인 ㈜세모의 직원들이 출자한 신용협동조합에서 계열사 자금을 장기대여하는 등 사실상 사금고로 활용돼온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1.세모신협 문어발 확장 금고 역할했나


㈜세모 임직원이 조합원… 사실상 사금고


유 전 회장의 일가족은 제2금융권인 신용협동조합까지 사실상 지배하며 계열사에 자금을 지원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세모의 지난 2013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세모는 인천공장 등을 담보로 세모신용협동조합에서 장단기 자금을 빌려 쓰고 있다. 세모신협은 세모 임직원 600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3월 말 기준 자산은 75억원이다. 전체 대출금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유 전 회장 일가가 보유한 계열사의 관계자들이 세운 신협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사금고화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세모신협이 주목 받는 이유는 유 전 회장의 과거 행적과도 무관치 않다. 유 전 회장의 첫 부인인 권윤자씨는 1990년대 초 대구 소재 보전신용협동조합 이사를 맡고 있었다. 보전신협은 대구 지역 구원파 신도 3,000여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2. 계열사들 잦은 증자는 왜

자본금 늘려 '천해지' 등 인수 수단으로


청해진해운의 모회사인 천해지와 그룹의 지주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를 둘러싼 유 전 회장 일가의 행보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천해지는 지난해에만 세 차례의 유상증자를 거치며 자본금 규모를 79억원에서 130억원으로 배로 늘렸다. 사진예술 작품을 판매하는 헤마토센트릭라이프연구소의 문화사업 부문을 합병하기 위해서다. 이 연구소는 '아해(Ahae· 兒 孩)'라는 이름의 얼굴 없는 억만장자 사진작가로 알려진 유 전 회장의 작품을 주로 다뤄왔다.

지주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 역시 2008년 천해지 지분 70.1%를 60억원에 인수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증자를 거쳤다.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된 지 6개월밖에 안 된 신생 컨설팅 회사가 매출 1,038억원, 순이익 54억원의 우량 회사인 천해지를 인수하려면 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아이원아이홀딩스에 지분을 넘긴 ㈜새천년은 천해지 매각으로 수십억원의 자금을 확보했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3년 후 자진 청산한다.

금융 전문가들은 이 모든 과정이 유 전 회장 일가의 계열사 관리, 편법승계 등과 관련된 움직임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3. 적자기업이 2,000억대 부동산구입?


법인통한 대출·비자금 활용했을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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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회장 일가족이 거느린 계열사 가운데 흑자를 낸 곳은 많지 않다. 지난해에 흑자를 낸 곳도 많아야 20억원대다. 그럼에도 10곳의 계열사가 국내에서 보유한 부동산 규모는 2,000억원대에 이른다. 서울 강남의 금싸라기 땅부터 제주도까지 전국 곳곳의 땅과 건물을 샀다. 천해지는 경남 고성군 동해면에 면적 13만1,000㎡, 장부가액 83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고 다판다와 문진미디어는 서울 강남의 금싸라기 부동산을 다수 확보했다. 강남 역삼동의 경우 장부가가 224억원에 이른다. 더욱이 유 전 회장 가족그룹의 계열사 수가 감사보고서상 드러나지 않는 곳까지 모두 30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돼 이들의 부동산 투자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관측된다. 유 전 회장과 두 아들은 개인적으로도 부동산과 주식 투자를 늘려 1,638억원어치의 개인 소유 부동산과 주식을 갖고 있다. 논란은 큰 이익을 내는 계열사가 없는데도 이렇게 많은 부동산을 어떻게 보유했느냐는 점이다. 금융계에서는 법인을 통한 대출로 꾸준히 부동산을 사들이는 것 이외 별도의 비자금 등을 활용했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4. 국제영상, 숨어있는 핵심기업인가

최근 2~3년새 지배구조 중심축으로 부상


유 전 회장 일가족은 30여곳에 달하는 계열사 등을 갖고 있다.

아이원아이홀딩스를 정점으로 해 유 전 회장의 장남과 차남이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는 해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 2~3년의 지분구조 변화를 분석한 결과 국제영상이 핵심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영상은 방송용 프로그램 및 영상물 제작·판매 등을 주요 사업목적으로 해 1984년에 설립된 회사다.

유 전 회장은 2009년까지 28.8%의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2010년 이후 갑자기 지분이 사라진다. 대신 계열사들이 그 공백을 메우면서 지분을 보유하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문진미디어(3.79%)와 아해(5.21%)가 지분을 사더니 2011년에는 천해지(5.21%), 청해진해운(4.17%), 그리고 지난해에는 트라이곤코리아가 지분 18.41%를 확보하면서 최대주주로 떠올랐다.

5. 거미줄 확장, 20년전 세모 본떴나

100억 넘는 법인 10개… 협동조합 방식 답습


3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세월호 오너가(家)가 그룹의 규모를 키우는 방식은 20여년 전 세모그룹의 복사판이다. 1982년 자본금 9,000만원으로 세모를 설립한 유 전 회장은 그룹을 초고속 성장시켜 재계를 놀라게 했다. 세모는 삼우트레이딩을 합병한 후 업종을 무차별적으로 늘린다. 건설·식품·유람선·수입판매·섬유·전기전자·안료산업·기계·제약·자동차부품·도료·조선·해운 등 거느리는 계열사만도 15곳에 달했다. 세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89년부터는 미국·중국·독일·인도네시아 등 4개국에 5개의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대우·한일합섬 등과 합작해 무역전시장과 호텔 등을 짓는 작업도 벌였다.

세모그룹이 해체된 후 20여년이 지난 지금 아이원아이홀딩스를 중심으로 한 세월호 오너가는 과거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해상여객(청해진해운) 사업뿐만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 제작(국제영상), 조선플랜트(천해지), 도료(아해), 자동차부품(온지구), 건강식품제조(세모), 건강식품판매(다판다), 주택건설(트라이곤코리아), 영어교육(문진미디어), 농축산(에그앤씨드) 등을 거느리고 있다. 자산이 100억원을 넘는 외감법인만도 10개사다. 계열사를 수많은 동업자와 함께 공동지배하는 '협동조합 방식'을 취하면서 기업의 규모를 키우고 있는데 과거 세모와 같다.

지분구조가 얽히고설켜 지배구조를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다.


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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