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빠름과 느림의 조화

손해보험협회 회장 오 상 현

아인슈타인을 포함해 근ㆍ현대의 위대한 물리학자들이 특히 관심을 가졌던 ‘속도’라는 개념은 과학에서뿐만 아니라 예술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빠르거나 느린 곡조가 조화를 이뤄 적절하게 잘 배열된 음악이 듣기에 좋다. 무용에서도 때로는 빠르고 때로는 느린 동작이 조화롭게 이뤄져야 미적 쾌감을 준다. 이것은 우리 삶이나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역량을 집중해 빠르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고 한편으로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일찍이 세계의 패권을 거머쥐었던 로마군의 장점 중 하나는 중갑보병의 빠른 기동력에 있었다. 기동력이 우수하다 보니 작전 펴기가 용이해 적의 의표를 찌를 수 있었던 것이다. 정보를 빠르게 입수하는 것은 신속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빠르기만을 추구하는 것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빠른 완공이었지만 부실 시공인 건물이 무너져 수많은 인명을 해쳤던 가슴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현대인은 무엇인가를 빨리 얻기 위해 급속한 것을 추구하지만 결국 그 이상 잃는 것도 많다는 비판이 현대 지성계에서 나오고 있다. 밀란 쿤데라의 ‘느림’은 속도로 대표되는 현대를 조소하면서 느림의 즐거움을 묘사한 소설이다. 속도에 묶이기보다 삶의 질을 높이려는 ‘다운시프트족’도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근대화 과정에서 생겨난 국민적 조급증을 여실히 목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도로 위이다. 조급증이 심해 양보가 없고 과속을 일삼거나 쓸데없이 차선변경을 하는 운전자가 많다. 그러다 보니 사고가 빈번하다. 실제 실험에 의하면 과속을 해도 실제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은 규정을 준수한 양보 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빨리병’ 때문에 자신과 남을 해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빠르게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 현대에서 꼭 느리게만 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도로 위처럼 여유를 가지고 양보해야 할 곳에서 빠른 속도만을 추구하는 것은 얻을 게 없는 위험한 행위에 불과하다. 훌륭한 예술처럼 빠름과 느림의 적절한 조화를 추구하는 것은 복잡다단한 현대에서 생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새로운 지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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