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분식회계의 본질과 대책

SK글로벌 사건은 영국계 펀드인 소버린이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 지분 14.99%를 매집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재계에서는 2,000억 원이 약간 넘는 정도의 자금으로 한국의 재계 서열 3위인 SK그룹의 경영권이 외국인의 손에 넘어 간다고 흥분하는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SK의 경영권이 바뀐다 해도 그것은 지배주주인 최씨 집안에만 나쁜 뉴스일 뿐 기업에는 나쁜 뉴스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해석한다.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유권으로 100%의 경영권을 독점하는 오너경영 체제를 묵인해 오던 한국식 자본주의의 허점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주식의 가격은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가치, 단기적으로는 주식의 매수세력과 매도세력의 힘에 의하여 결정된다. 기업가치는 과거의 회계정보인 주당 순이익이나 경상이익 등을 기초로 하여 추정한 미래 현금흐름의 예측치를 현재가치로 할인하여 결정한다. 회계정보는 재무제표를 통하여 전달되며 재무제표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공인회계사의 외부감사를 받는다. 공인회계사는 재무제표가 기업회계기준에 맞게 작성되었는가를 회계감사기준을 적용하여 감사하고 감사의견을 표명한다. IMF외환위기 이후 이들 기준은 모두 국제기준에 맞게 개정됐다. 정부는 외부감사의 한계를 인정하여 상장기업들에 대하여 사외이사, 감사위원회, 내부회계관리자, 내부감사조직, 준법감시인 등을 두고 내부통제제도를 설치, 운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 제도나 기준은 도입되었지만 이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의지나 능력이 부족하여 작금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자본시장의 존립근거는 기업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신뢰성 있고 유용한 회계정보이기 때문에 분식회계는 불공정거래와 함께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2대 악(惡)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분식회계에 대한 수요가 없어지지 않는다. 회계분식은 비자금 또는 경영실패로 회사가 부실해져서 시작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양자가 겹치는 경우도 흔하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분식회계가 많았던 이유는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회계정보를 이용한 경우가 별로 없어 회계에 대하여 무관심하였고 따라서 좋은 회계정보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회계분식 자체를 심각한 범죄로 보는 시각은 더욱 없었다. 따라서 외국인 투자가 들은 역동적이기는 하나 오너중심의 기업지배구조하에서 회계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못한 한국 기업들에 대하여 높은 비율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적용하여 왔다. 기업 특히 상장기업의 회계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증권관계법률은 상장기업들의 회계관련 내부통제시스템을 엄격하게 유지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회계분식은 경영진의 월권과 관련자들의 공모에 의하여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분식회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분식회계의 대가를 비싸게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회계정보의 생산과정은 오너경영자, 최고경영자, 최고재무책임자, 외부감사인 등 신분적 특권을 통하여 초과 수익을 누리고 있는 집단들이 과점 하고 있기 때문에 회계정보의 시장에서는 인센티브의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벌칙은 큰 효과를 갖는다. 정부는 SK글로벌 사건으로 또 한번 도마 위에 올라온 분식회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CEO의 재무제표 인증 의무화, 외부감사인의 강제 교체, 회계분식에 대한 집단소송 제 도입, 대주주에 대한 자금대여 금지 등의 극약처방을 고려하고 있다.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누적된 회계 분식의 청소를 허용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회계의 투명성은 기업 지배구조의 선진화, 회계기준제정기구, 외부감사인과 금융감독기구의 전문성과 독립성 확보, 그리고 위반자에 대한 강력한 제재시스템이 잘 맞물려야 겨우 확보할 수 있는 어려운 숙제다. 우리나라가 이 과제의 해결 역량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세계시장은 우리 경제를 결코 일류경제나 선진경제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김일섭(이화여자대학교 경영부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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