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26일] 필그림 파더스

1620년 12월26일 대서양을 건넌 범선 한 척이 북미 대륙의 땅으로 들어왔다. 배의 이름은 메이플라워호. 배 안에는 영국인 이주민 102명이 타고 있었다.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가 바로 그들이다. 메이플라워호가 당초 기대했던 목적지는 보다 남쪽에 위치한 버지니아. 계획대로 버지니아에 당도했다면 미국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버지니아에 이미 소규모 영국식민지(제임스타운)가 존재했기 때문. 제임스타운에는 질병으로 이주민이 몇 명 남지 않았지만 영국국교(성공회)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메이플라워호의 사람들은 풍랑에 떠밀려 오늘날의 매사추세츠 지역에 도착했지만 종교적 자유라는 보상을 얻었다. 미국 사회가 여기서 받은 정치적 영향은 더욱 크다. 목적지 변경으로 영국왕으로부터 위임받은 버지니아 일대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되자 이주자들은 배 위에서 ‘다수결 원칙으로 운영되는 자주적 식민정부 수립’ 원칙에 합의한다. 승선자 중 성인남자 전원(41명)이 서명한 ‘메이플라워호 서약’은 미국 독립과 헌법의 기초가 됐다. 정착민 102명의 구성은 제각각이었다. 35명은 종교적 자유를 추구했던 청교도 급진파, 나머지는 왕당파와 성공회교도, 식민지에서 한몫을 챙기려는 일확천금주의자였다. 환경도 거칠었다. 이듬해 봄 배가 떠날 때는 절반 이상이 추위과 배고픔으로 사망한 상태였다. 종교적 신념이 생사를 가르던 시절 정착인들은 내부 분란이 뻔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서로를 감싸며 씨를 뿌렸다. 화합의 결과는 신대륙의 성공을 낳았다. 필그림 파더스. 직역하자면 순례시조 정도지만 미국사에서 그 의미는 종교를 뛰어넘는다. ‘건국의 씨앗을 뿌린 선조들’이란 뜻으로 미국인들의 존경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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