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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관객의 문화 놀이터로 형제이름 따 수현재 극장 세워
중장년 겨냥한 작품 주로 공연
무료함·형 죽음에 한때 슬럼프… 김기덕 감독 만나 야성 되찾아
지금은 수년째 머리에 그려온 40대에 대한 이야기 쓰고 있어
서울 종로구 동숭동 1-52번지. 한때 서울대 문리대 운동장이었던 이곳은 동숭동 산동네 판자촌에 살던 형제의 놀이터였다. 형편상 장난감은 사치였던 시절, 여섯 살 터울의 형제는 드넓은 운동장을 함께 뛰어다녔다. 성인이 된 동생은 지난 1995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형을 추억하며 형과 자신의 이름을 따 그 옛날 놀이터 자리에 극장을 세웠다. 연극인과 관객의 문화놀이터, 조수현·재현 형제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이곳의 이름은 수현재씨어터. 개관 1주년을 맞은 수현재 대표인 배우 조재현(사진)을 극장 옥상에 자리 잡은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연극은 운명이자 숙명="연극에 대한 애정? 책임? 그런 거 없어요." '연극 사랑이 남다른 것 같다'는 질문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말없이 난로에 장작을 밀어 넣던 그는 자세를 고쳐 앉고는 창밖으로 보이는 대학로 일대를 바라봤다.
"어릴 때 제가 태어나 자라고 성인이 돼 연기를 시작한 곳이 이곳 대학로입니다. 사실 제가 드라마나 영화보다 연극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연극에 대해 엄청난 철학과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연극과 대학로가 그저 제 운명이자 숙명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죠." 그가 돈 되는 강남땅이 아닌 대학로에 공연장을 짓고 돈 안 된다는 연극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는 이유다.
◇1년간 중장년층 겨냥 작품으로 관객 확대=공연장을 짓는 게 어린 시절의 막연한 꿈이었다는 그는 "단순히 돈만 놓고 연극을 대하고 계산하며 내 인생을 살지는 않았다"며 "공연장을 통해 돈을 많이 벌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빚을 내가며 돈을 들이고 싶지도 않다"고 잘라 말했다. "반듯하게 지은 공연장을 반듯하게 유지"하는 것. 이게 수현재씨어터 대표 조재현의 목표다. 이제 1년이 된 수현재는 그런 면에서 의미 있고 반듯하게 성장하고 있다.
수현재는 지난해 3월 개관작 '그와 그녀의 목요일'을 선보인 후 '미스 프랑스' '더 로스트' '황금연못' '리타' '민들레 바람 되어'를 잇따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이순재·신구·나문희·성병숙 등 중견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 연극 '황금연못'과 조재현·이광기·임호가 출연한 '민들레 바람 되어'는 중년 관객을 대학로로 끌어들이는 데 한몫을 했다. 개관 당시 "나 같은 중년 세대가 찾을 수 있는 공연장으로 만들고 싶다"던 조재현의 바람이 이뤄진 셈이다.
◇인생 바꾼 연극, 강렬한 첫 경험=미술 전공을 꿈꾸던 그가 연기의 맛을 본 건 중학교 3학년 때다. 누나 손에 이끌려 간 공연장에서 생애 첫 연극인 이강백의 '결혼'을 보고 말로 표현 못할 감정에 휩싸였다.
"배우가 관객의 물건을 빌려 갔다가 나중에 돌려주면서 '우리의 삶도 누군가에게 빌려 쓰는 것이다. 그러니 깨끗하게 쓰고 돌려줘야 한다'는 말을 해요.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데 '넌 앞으로 어떻게 살 거니'라는 메시지가 내내 맴돌았죠." 관객은 달랑 5명뿐인 연극이었지만 그때의 '첫 경험'은 조재현의 진로와 인생을 바꿔놓았다.
◇편식 없는 전천후 활약=연기는 운명 같았다. 대학 졸업 이후 연극무대를 전전하던 그는 1989년 KBS 공채 탤런트에 합격했다. 공채 신분으로도 몰래 연극에 출연할 정도로 연기에 대한 갈증은 컸다. 물론 방송국과 공채 동기 사이에서는 '별종'으로 낙인 찍혔지만 말이다. 꾸준히 활동반경을 넓힌 조재현은 연극·드라마·영화 등의 장르는 물론 상업작품과 독립작품을 가리지 않는 '편식 없는 연기'를 해왔다. 지난해만 해도 드라마 '정도전' '펀치'와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지방공연)' '민들레 바람 되어', 영화 '역린' 등에 잇따라 출연했다.
그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라면 장르가 뭐가 됐든 제작비가 얼마든 개의치 않는다"며 "누군가는 조재현이라는 재화가 너무 빨리 소모되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지만 스스로 그런 생각에 괴로워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10년 가까이 2개 이상 작품을 병행하는 삶이 고단할 법도 하지만 조재현은 "연극 할 때의 조재현과 드라마에서의 조재현, 영화배우 조재현은 엄연히 다른 존재"라고 한다. 물리적인 작품 편수와 시간제약을 떠나 작품마다 임하는 배우로서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무료한 연기, 형의 죽음, 그리고 슬럼프=오히려 그는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돈 받던 '안정적인 시절' 배우생활에 회의를 느꼈다. 1995년, 방송국 사극에 출연하며 매일 세트장으로 '출근'하던 때였다. "제 배역이 고종 임금이었는데 매일 촬영장에서는 가만히 앉아 '들라 하라' '고하라' 같은 비슷한 대사만 반복하는 거였죠. 무료함을 느끼면서도 통장에 들어오는 돈을 확인하며 안주하는 제 모습에 '내가 꿈꾼 배우는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슷한 시기 방송국 촬영감독이었던 형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자 그나마 남아 있던 의욕도 바닥을 쳤다. 형을 대신해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으라는 친척들의 권유에 '이게 내 한계인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김기덕, 조재현의 야성을 깨우다=방황하는 그를 붙잡아준 건 영화감독 김기덕과의 만남이었다. 수많은 배우에게 퇴짜를 맞은 시나리오 한 편이 돌고 돌아 조재현을 찾았다. 한강에서 자살한 시체를 숨겼다가 유가족에게 돈을 뜯어내고 사는 양아치의 삶을 그린 영화 '악어'였다. '들라 하라' '고하라'만 반복하던 조재현에게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한강 바닥을 침대로 삼는 양아치 배역은 묘한 쾌감을 안겨줬다.
"공장의 부속품 같던 제가 야생 날다람쥐처럼 사방팔방 돌아다니니 살 맛이 난 거죠." 돈이 없어 수차례 촬영이 중단되고 보기 좋게(?) 흥행참패를 기록했지만 배우 조재현은 영화 '악어'로 야성을 되찾았고 그렇게 일어설 수 있었다.
◇'작가' 조재현을 위한 작업=조재현은 요즘 글을 쓰고 있다. 시나리오가 될지 희곡이 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몇 년 전부터 머리에 그려온 스토리를 틈틈이 글로 정리하고 있다. "집착이 일상이 돼버린, 지극히 평범한 40대 유부남의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주인공이 10년 전에 헤어진 여자를 관찰하고 여자의 일상에 집착하면서 행복을 느끼는데…" 줄거리를 풀어놓는 내내 그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일까. 전날 밤늦게까지 작업실에 남아 쓴 글이 컴퓨터에 저장되지 않았단다. "제가 컴퓨터를 잘 못 다뤄요. 수년째 머리에 있던 이야기이기는 한데 다 날아가버렸네(웃음)."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어놀던 소년의 얼굴에는 어느덧 주름이 길을 냈고 머리에는 흰 눈이 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그 옛날 놀이터 자리에 앉아 재미를 찾는 해맑은 미소만큼은 그 소년의 모습 그대로일 것만 같다.
He is… -영화:'젊은 날의 초상' '악어' '섬' '나쁜남자' '천년학' '역린' 외 다수 -연극:'에쿠우스' '경숙이 경숙아버지' '그와 그녀의 목요일' '민들레 바람 되어' 외 다수 수상내역 △1991년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자상 △1992년 청룡영화제 신인연기자상 △2002년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최우수남자연기상 △2011년 연극열정3어워즈 작품상 △2013년 제17회 몬트리올판타지아영화제 남우주연상 △2013년 제1회 시드니영화제 장편 부문 남우주연상 △2014년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배우·관객으로 자극받은 작품… 연극적 재미 공유하고 싶었다" 1주년 기념작으로 '경숙이 경숙 아버지' 선택 왜? |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