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밀레니엄을 며칠 앞둔 지난 99년 12월 미국 최대 인터넷 회사인 아메리칸 온라인(AOL)이 미디어그룹인 타임워너를 인수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당시 `닷컴`, `넷`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회사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항공기 티켓을 발매하는 인터넷 회사의 시가총액이 미국 3대 항공사 시가총액의 합계를 뛰어넘었던 시절에 AOL은 자본금 2,400억 달러의 세계 최대의 합병을 단행했다. 당시 AOL 주가는 주당 75달러까지 급상승했고, AOL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주가를 원동력으로 미국 굴지의 미디어 회사를 사들인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상 여러 차례의 거품이 형성됐다가 붕괴됐는데, 그 과정에 `묻지마`식 투자자들의 광폭한 행동이 나타났다. 뉴욕 월가에선 90년대에 형성된 증시 거품이 꺼지기 직전의 사례로 AOL-타임워너의 합병을 가장 많이 든다. 나스닥 지수는 이 합병이 발표되고 세달후에 5,000 포인트를 넘어섰다. 당시 AOL측은 “일반 정보, 연예오락 서비스,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최고의 회사”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던 AOL-타임워너의 주가는 합병 직후 폭락했고, 3년후인 지금 최고점에서 80% 하락한 주당 15 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합병을 주도한 스티븐 케이스, 제럴드 레빈 회장은 물러나고, AOL측 주요 임원들은 지금 이 회사에 거의 남아있질 않다.
이 회사는 11일 회사 로고에서 AOL이란 단어를 제거할 계획임을 밝혔다. 실패한 사업부문을 회사 간판에 내세우고 싶지 않기도 하겠지만, 그동안 합병이 실패했음을 시인한 것이다.
자본 시장은 수익과 가치의 수요공급에 의해 움직이지만, 때론 탐욕과 두려움에 의해 크게 동요하기도 한다. AOL-타임워너의 합병이 뉴욕 증시 거품의 정점을 예고했다면, AOL 로고의 삭제가 미국 경제의 회복과 뉴욕 증시 상승을 예고하는 것일까. 로고 변경의 뉴스가 나온 이날 이 회사의 주가는 2% 상승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신경제 영역의 영업 부진으로 구 경제 영역의 경쟁력도 잃어가고 있다. 케이블 TV인 CNN은 시청률 경쟁에서 폭스 뉴스에 밀리고 있다. AOL 사업 부문이 타임워너 부문의 수익을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거품이 붕괴된 후 나타나는 경기 회복은 느리고 완만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경제전문가들의 전망이 새로이 로고를 회복한 타임워너사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