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앞서 지난달 12일 반기 환율보고서를 통해 “일본이 경쟁력을 목적으로 통화가치를 내리거나 환율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이 암묵적인 지지를 보냈던 일본의 경기부양정책에 대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해석됐고, 이는 당시 99엔까지 치솟았던 엔ㆍ달러 환율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지난달 하순 워싱턴서 열렸던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회의는 다시 ‘일본의 정책은 디플레이션 타개를 위한 것’이라는 면죄부를 줬다. 이에 따라 다시 엔ㆍ달러 환율의 흐름은 상승세로 돌아서 결국 9일(현지시간) 100엔을 돌파하기까지 이르렀다.
물론 이날 엔화 약세는 미국의 신규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5년여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미국 경제지표의 호조가 작용했다. 그러나 엔ㆍ달러 환율 급등의 기본적인 요인은 일본의 무제한적인 통화완화정책이 자리잡고 있는 데다, 엔ㆍ달러 환율이 120엔대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마저 나오고 있는 만큼 미국이 지속적으로 엔 약세를 용인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 세력인 자동차 등 미국내 제조업체들의 반발 움직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는 점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부담이다. 크라이슬러ㆍ포드ㆍ제너럴모터스(GM) 등 ‘빅3’가 회원으로 있는 미국 자동차정책 위원회(AAPC)는 이날 성명에서 “일본의 환율조작(currency manipulation)이 새로운 단계에 다다랐다”며 “미 의회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고 밝혔다. 또 이 성명은 “엔ㆍ달러 환율의 상승은 미 수출과 일자리를 줄이게 되며 일본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포함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10~11일 영국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하는 제이컵 루 재무장관이 “엔저를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혀 미국 정부가 앞으로 엔화 약세를 그냥 두고 보지만은 않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루 장관은 10일 C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경쟁적인 양적완화를 피하기 위해선 일본의 경기부양책은 국제적 합의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로이터통신은 루 장관의 언급에 대해 G7 재무장관 회담이 엔저를 둘러싼 불편한 논쟁의 장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 정부의 경기회복 노력은 지지하되, 환율 약세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기존 입장이다. 통화완화 정책과 더불어 규제완화와 경쟁촉진에 바탕을 둔 근본적인 구조조정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에드윈 트루먼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환율보고서가 나온 후 “미 정부는 일본 경제 불황타개를 위한 아베노믹스의 초점이 대외 수출 확대가 아니라 국내경기부양을 통해 이뤄지는 지를 지켜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