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 체제의 강점을 극명하게 설파한 루드비히 본 미제스교수가 생각난다. 시장의 모든 기업과 상품은 매일매일 유권자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투자자는 주식시장에서, 소비자는 상점에서 거래를 하는데 이들의 투자와 구매행위를 그는 투표행위로 보았다.거품주식이나 가짜와 불량상품도 나와 있지만 이들의 투표권 행사는 정보와 분별력이 발전함에 따라 대체적으로 올바른 선택의 길로 나간다는 뜻이다. 기업과 상품은 이들 유권자의 심판을 두려워하여 1등 후보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게 되고 선의의 경쟁은 시장의 활력을 더욱 자극한다고 보았다.
이 원리는 대체적으로 맞는 말이다. 바가지 상혼이 도마 위에 오르고 불량 주식에 멍이 들어 재산을 날리는 문제가 생기지만 자유 시장이라는 큰 틀은 그런 흐름을 이끈다.
소액 주주들의 목청이 높아지고 소비자 고발이 왕성해지자 각 기업의 경영본부는 아연 긴장상태에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도가 지나쳐 경영권 침해로까지 발전할 것이란 우려의 소리도 들리지만 이 새로운 긴장의 틀을 생산성으로 연결한다면 그야말로 한국 기업의 펀더멘털을 기대해도 좋을 듯 싶다.
혹여 간섭이 지나쳐 경영권 침해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임계점의 반동 원리>에 따라 사회적 비판압력을 받게 된다. 극단적인 노조 행동주의가 IMF 사태 이후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사실상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이런 시장적 민주체제의 틀과 발전동력을 무시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총수체제에 의한 독단 경영이 기업을 이끌어 왔었다. 그것은 독점적 정치권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시장구조를 지배해 온 것이 정부였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인허가권, 금융조달권을 손 아귀에 쥔 곳은 정부이며 권력이었다. 자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총수체제로 갈 수 밖에 없었다고도 볼 수 있다.
시장경제로 간다는 뜻은 정부로부터 투자자와 소비자에게로 권력이 이동한다는 의미이다. 실제적으로도 소비자의 행동양태는 기업사활을 좌우할 만큼 강력해 지고 있다. 정보수단의 엄청난 보급과 시장진출입의 자유화 그리고 치열한 상품경쟁은 소비자 주권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정치는 독과점 행태에 머물고 있고 정치시장에는 거품상품과 부량상품이 판을 치며 룰 마져 엉망이다. 50줄만 넘어도 기업세계에서는 보따리를 싸고 있는데 거대정당의 실세명단의 연세들은 아직도 60뒷줄들이다.
유권자는 파는 사람 마음대로인 셀러스 마킷트에서 투표권을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시장경제하면서 민주주의하겠다는데 그 철학이 어디쯤에 있는지 알듯하다.
/孫光植(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