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16. 지옥에서 천당으로

다섯번째로 출판한 `차ㆍ비행기ㆍ배`라는 그림책에는 여러 자동차와 비행기ㆍ선박, 그리고 신나게 달리는 기관차가 많이 실려 있다. 그림 중에는 내가 직접 그린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내 손을 거치지 않고 실린 작품역시 단 하나도 없다.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눈에 불을 켜고 자료를 모으고 나의 의도대로 화가에게 주문을 해서 그려졌다. 이는 출간이후 내용상 문제가 발생할 경우 발행인으로서 모든 법적 책임은 물론, 도의적 책임까지 나의 몫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11월 어느 날이었다. 종로서적에 들렸더니 한 직원이 `대한통운`에서 나를 찾는다면서 자신이 받았던 명함 한 장을 전해 주었다. 명함에는 대한통운 총무부 복진태라고 돼 있고 밑에는 전화번호가 있었다. `대한통운에서 무슨 일일까? 복진태라는 사람이 왜 나를 찾지?` 그러다가 문득 머리를 스쳐가는 게 있었고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7월에 펴낸 신간 `차ㆍ비행기ㆍ배`라는 책에 그려 넣은 화물 자동차에 대한통운이라는 상호를 선명하게 써 넣은 것이 생각났던 것이다. 차의 모델을 대한통운 화물차로 했으니 사단이 나도 보통 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허락 없이 남의 회사 상호를 이용했다고 손해배상을 하라고 하면 어떡하지? 책을 폐기 처분하라면 그야말로 큰 일이 아닌가. 어떻게 시작한 출판인데…. 맨 주먹이다시피 시작해서 다행히 책이 그런대로 팔려 힘들어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 만감이 교차하면서 가슴이 막히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잠시 이마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차피 내 잘못이라면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 공중전화를 찾아 명함에 있는 번호로 조심스럽게 전화를 들었다. “대한통운이죠? 복진태씨 부탁합니다.” “접니다. 누구시죠?” “예림당 출판사 나춘호라고 합니다. “아~ 예, 지금 좀 만납시다. 어디 계시죠?” 그는 다짜고짜 우선 만나자고 말했다. “종로서적 근처에 있습니다만, 무슨 일이신지?” “나쁜 일은 아니니까 지금 좀 만납시다.” 복진태씨와 나는 종로서적 옆 다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데졂だ?마음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다. `나쁜 일이 아니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우선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은 아닐까?` 온갖 불길한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쳤다. 한참 후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기에 엉거주춤 일어나며 손을 들었다. “선생님 찾느라고 애 먹었습니다.” 그가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워낙 없이 시작하다 보니….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우리 사장님께서 꼭 나 선생님을 찾아 뵙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라고 해서 찾았습니다.” “예? 고맙다니요?” 나는 어리둥절했다. 복진태씨의 말은 이러했다. 직원 중 한 사람이 아이를 위해 `차ㆍ비행기ㆍ배`라는 그림책을 샀는데 책 안에 대한통운이라는 상호가 뚜렷한 차가 멋지게 그려져 있는데 마치 대한민국 화물 자동차의 상징처럼 보였다는 것이었다. 그 직원은 과장에게 이 얘기를 했고 과장은 부장에게 보고를 해서 마침내 사장까지 알게 됐다는 것. 그래서 책을 여러 권 사다가 간부사원과 사장이 직접 봤는데 사장 말씀이 “이 책의 그림 하나가 비싼 신문광고보다 몇 배 낫다. 우리 회사로서는 광고도 아주 큰 광고를 공짜로 한 셈이다. 이런 고마운 출판사 대표가 어떤 사람인가 알아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마음은 지옥에서 천당으로 온 기분이었다. <나춘호 예림당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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