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쉼터도 싫고… 밖엔 벌써 찬바람 부는데…"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첫날<br>큰 충돌은 없어… 시민단체 "즉각 철회해야"

노숙인 강제퇴거 조치가 시행된 첫날인 22일 서울역 광장에서 시민단체들이 조치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간밤에 역사에서 내쫓긴 한 노숙인이 길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다. /박서강기자

"나를 쓸어냈다 이거지. 한번 해보라 그래." 노숙인 강제퇴거 시행 첫날인 22일 오전1시30분 서울역 광장은 다행히 별다른 충돌이나 실랑이 등은 벌어지지 않았다. 20여명의 노숙인들은 마지막 열차가 도착한 직후 역무원과 공익요원들의 안내로 역사 밖으로 나왔다. 이들은 그러나 단잠을 자다 깨어난 게 화가 난 듯 '집'에서 쫓겨난 불만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며 일부 위협적인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송모(46)씨는 "원래 같으면 한창 잘 시간인데 갑자기 쫓겨났다"며 "지금 시간에 어디 가서 잠을 자야 할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10년 넘게 서울역에서 살아왔다는 김모(47)씨는 "서울역 측은 쉼터에 가면 된다고 설득하지만 쉼터는 갖가지 규율이 너무 많아 내 '라이프 스타일'과 맞지 않다"며 "이 안 닦고 안 씻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서울역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날이 밝자 노숙인들을 위해 시민단체들이 나서기도 했다. 홈리스행동을 비롯한 10여개의 시민단체는 이날 오전 서울역 광장에서 강제퇴거 조치의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장은 "노숙인 전체가 잠재적 범죄자임을 전제하는 이번 조치는 평등권과 기본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비판했다. '쉼터의 규율'이 아닌 '서울역의 자유'를 원하는 노숙인들의 속마음을 모르지 않는 서울시는 대책을 마련했다. 현재 서울시는 2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자유카페'를 신설하기 위해 건물을 물색하고 있다. 자유카페는 상대적으로 규율이 엄하지 않은 쉼터다. 서울시는 또 매년 겨울철에만 실시했던 응급구호방 제공과 임시주거 지원을 올해부터 여름철에도 확대 시행하기로 했다. 또 일자리 제공을 위한 특별자활사업 대상자에 서울역 노숙인 200명을 추가로 포함시킬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대책의 실효성을 의심하고 있다. 임시방편의 미봉책일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코레일의 강제퇴거를 옹호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실태 조사를 위해 서울역 주변 노숙인을 대상으로 설문에 나섰다. 인권위는 다음달 말 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서울시와 보건복지부에 정책 마련을 권고할 방침이다. 이성택 인권위 조사관은 "물론 공공기관 노숙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지만 그들을 강제 퇴거하는 것 역시 옳은 조치는 아니다"라며 "재활을 자발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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