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과학기술 경쟁력 사람에 달렸다


한국전쟁의 폐허와 외환위기 등을 이겨낸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나라 중 하나가 됐다. 30년 전만 해도 존재감조차 미미했던 삼성ㆍ현대 등은 세계 전자ㆍ자동차ㆍ조선산업을 주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했고 지난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팝송과 할리우드 영화가 판치던 문화계도 어느덧 K팝과 우리 영화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땅과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이처럼 세계 무대에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우수한 인적자원 덕분이다. 그러나 극도로 낮은 최근 출산율, 인적자원 감소와 질적 저하로 국가의 미래 경쟁력이 급속하게 떨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해외 한인 과학자도 중요한 자산

다행히 최근 한국연구재단이 다양한 국가 핵심과학기술인재 양성 프로그램(글로벌 박사 펠로십 등)을 통해 인적자원의 글로벌화와 질적 향상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한 글로벌 연구실과 연구 네트워크 지원사업,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orld Class UniversityㆍWCU) 육성사업 등을 통해 연구수준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해 왔다. 특히 WCU 사업은 세계적인 석학들을 지원, 이들을 통해 학문적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시행돼왔다.


한국계 학자들의 해외 활동도 왕성하다. 미국ㆍ일본 등지의 대학에서 중추적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많은 한국계 교수ㆍ연구원들은 연구 역량이 뛰어나며 인적 네트워크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국가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도 상당히 있다. 필자도 연구 방향이나 논문 작성, 해외 유명 학자들과의 교류 등에 이 분들의 도움을 상당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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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금융ㆍ재정위기로 신진 한국계 과학자들이 연구비 수주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소중한 인적자산들이 중견 혹은 세계적 연구자로 성장하기 전에 좌절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럴 때 우리나라가 우수한 해외 한국계 과학자들을 지원한다면 이들이 성장하고 국내 과학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해외 석학들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ㆍ강화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상위권 저널에 주(主)저자로 논문을 발표했던 필자의 제자가 최근 의대로 진로를 바꿨다. 요즘 많은 우수 학생들이 공무원ㆍ공기업 혹은 교직을 선택한다. 이들 직장은 별도의 시험 준비를 한 학생들의 몫이지, 우수한 이공계 학생들이 들어갈 확률은 높지 않다고 본다. 많은 정부기관들이 전문성 있는 인재를 필요로 하지만 대부분 시험으로 선발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ㆍ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정규직 연구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인력도 극소수다.

이공계 기피 근본적 해결책 시급

이건희 삼성 회장은 수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S급 인재를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초빙하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정부도 우수 인재들을 공공기관ㆍ정부출연연구기관 등에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나 우수 인력 해외 유출 등 난제들을 해결하려면 단편적ㆍ일시적 정책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특히 과학기술자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의 업적ㆍ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풍토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십년수목백년수인(十年樹木百年樹人ㆍ10년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며 사람을 심는다)이라 했다. 유능한 과학기술인력을 양성ㆍ배출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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