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대전/선진국 금융기관] M&A 열풍 아직도 진행중

지난해 4월 네이션스 뱅크가 뱅크 어메리카와 합병할 것이라는 루머가 돌았다. 그 소식을 들은 퍼스트 유니언의 창업자 에드워드 크러치필드 회장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이웃에 사는 네이션스 뱅크의 휴 맥콜 회장이 상업은행으로 미국 랭킹 1위의 은행을 경영하는 게 못마땅했다. 크러치필드 회장은 다음날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곰곰히 생각했다. 『어디를 인수할 것인가』 그의 타깃은 웰스 파고·멜론·PNC 은행 등이었다. 체이스맨해튼 은행과 합병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었다. 크러치필드 회장은 랭킹 6위 은행의 회장으로 글로벌 경제에서 존재 가치가 미미하다는 점을 깨닫고 있었기에 지금도 인수·합병의 꿈을 진행중에미국 금융시장에 대형화와 다각화 바람이 불고 지난해 은행간 인수 및 합병(M&A)이 광풍처럼 지나갔지만, 여전히 대형은행 결합에 의한 지각 변동 가능성은 남아 지난해 4월6일 미국 랭킹 2위의 시티코프와 트래블러스 그룹이 전격적으로 합병을 단행했다. 자산 규모 7,000억 달러, 고객 1억명, 영업활동 국가가 100여국이나 되는 합병회사는 선진 7개국(G7)의 하나인 캐나다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서는 금융력을 보유했다. 이어 1주일후 랭킹 3위의 네이션스 뱅크가 랭킹 4위의 뱅크 어메리카와 합병, 상업은행으로는 1위로 올라섰다. 일주일 사이에 1위에서 3위로 밀려난 체이스맨해튼 은행도 가만 있지 않았다. 체이스 은행의 월터 쉬플리 회장은 메릴린치·JP 모건 등과 합병을 하자며 손길을 내밀었다. 체이스가 파트너를 구해 합병을 성사시키면 20세기말 미국 금융사에 또다른 기록을 남길 전망이다. 뉴욕 월가에선 미국 은행들의 합병이 완료되면 대형은행 5개만 남고, 중소은행들은 지역화하거나 특화함으로써 존재 가치를 유지할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미국 금융계의 대형화 바람은 80년대말 공산권 붕괴후 세계 경제를 장악하기 위한 연방정부와 금융정부와의 합작품이다. 80년대 후반, 미국 금융산업은 집단 도산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엔화 강세로 무장한 일본 은행과 기업들이 캘리포니아와 하와이를 사들이고, 뉴욕 중심의 록펠러 센터를 점령해도 미국 은행들은 방어할 돈이 없었다. 80년대말 미국의 최대 적인 소련이 무너지자, 미 중앙정보국(CIA)는 『글로벌 경제에서 강력한 무기는 금융의 힘』이라며 금융패권을 일본으로부터 탈환하기 위한 전략 마련을 백악관에 건의했다. CIA 보고와 별도로 91년 미 재무부는 금융산업 경쟁력 약화가 미국 경제를 저해하고 있다고 판단, 금융산업 체질 개선에 관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당시 공화당의 부시 정부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 저축대부조합(S&L)의 부실 여신을 정리하기에 바빴기 때문에 실제적인 금융질서 재편은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한 후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93년 취임한 클린턴은 전임 대통령 때 마련된 재무부 보고서를 이행했다. 60년전 대공황 때 만들어진 규제 위주의 금융관련법을 뜯어고치고, 금융산업의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은행의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을 강화하고, 은행과 증권·보험업무의 업종간 경계를 허물었다. 연방정부의 금융산업 구조조정 전략은 은행들에게 생존을 위한 변화 모색을 강요했다. 그 방향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상호 영역 진출과 M&A였다. 90년대 들어 미국 금융기관의 M&A 붐은 유행병처럼 번져나갔다. 남이 인수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거나, 다른 은행이 합병해 덩치가 커지면 이에 뒤질세라 경쟁적으로 합병을 단행하는 병적인 현상도 보였다. 80년대 일본이 엔화로 세계를 공략할 때 내세웠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표어는 90년대 미국에서 「큰 것이 아름답다」는 구호로 바뀌었다. 96년말 2위 은행이었던 시티코프와 카드전문업체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고위 간부들이 극비리에 만나 합병을 의논했다. 두 회사의 합병 논의는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나 시티코프의 자문회사였던 모건 스탠리가 바짝 긴장했다. 자칫하다간 거대 은행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입장이었다. 모건 스탠리는 그 길로 덩치를 기우기로 전략을 바꿔 또다른 투자은행인 딘 위터와 디스커버 등과 함께 3자 합병을 단행했다. 모건 스탠리의 덩치가 커지자 경쟁회사였던 트래블러스는 97년 살로먼 브러더스를 인수, 살로먼 스미스바니라는 대형 투자은행을 발족시켰고, 이것도 모자라 이듬해 시티코프와 합병을 단행했다. 미국 은행들의 합병 붐 배경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도사리고 합병을 하면 두 회사의 중복 부문을 도려내 비용을 줄이고, 더 많은 순이익을 낼 수 또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이 합병함으로써 여수신 업무와 증권·보험·채권을 망라, 금융산업의 백화점식 경영이 가능해진다. 규모가 커지면 자금 유통이 원활해지고, 국제적인 대형 프로젝트 금융을 따기 쉽다. 그렇지만 본질적인 목적은 글로벌리제이션의 흐름을 주도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적인 점포망을 형성하고, 단일시장화하고 있는 유럽 공동체(EU)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미국 은행들은 대형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심지어 미 금융계에서는 앞으로 몇년안에 월가에 대형은행 5개만이 남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돌고 미국 은행들은 일본 은행들에 밀려 전세계 랭킹 30위권에 1개밖에 차지하지 못했던 80년대말의 상황을 역전시키고, 공룡의 몸집으로 글로벌 시장을 질주하고 있다. 뉴욕=김인영특파원IN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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