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시장주의자의 궤변/김상석·정경부(기자의 눈)

『어음을 할인하는데 있어서 초단기로 운용하지 말고 한달이상으로 운용하되 만기회수가 불가피할 경우 해당기업에 적어도 1∼2주일전에 통보해 주시오.』『만일 기업들이 금융기관들의 부당한 자금회수로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해올 경우 해당 금융기관에 대해 특별검사를 실시할 것입니다.』 70년대 개발연도에나 어울릴 듯한 이같은 섬뜩한 발언이 23일 간담회에서 소위 「시장주의자」 강경식 부총리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지난 3월 경제부총리로 임명된 강부총리는 취임후 스스로를 시장원리를 존중하는 시장주의자라고 자처한 바 있다. 강부총리가 시장주의자임을 자처한 것은 경제를 시장기능에 맡기고 정부는 가급적 간섭을 삼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각 경제주체들은 금융자율화시대에 걸맞는 경제관료의 탄생을 기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날 강부총리의 발언은 이같은 기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최근 금융시장이 위기상황임은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다. 그러나 과연 이같은 위기국면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 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것은 결국 문제의 해결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지나치게 단순한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최근의 금융위기가 제2금융권의 무차별적인 자금회수 때문으로 보는 시각은 너무나 단견이다. 현 상황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들의 지나치게 차입금 의존적인 기업경영방식과 관치금융에만 길들여져온 금융기관의 영업행태에서 찾아야 한다. 그동안 제도금융권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온 제2금융권의 자구책 강구노력이 일방적으로 매도당해서도 안되며 현재의 금융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희생양이 돼서도 안된다. 이날 강부총리는 금융기관의 기본적인 사명을 「기업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한 나라의 경제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당국자가 이같은 기업편향적인 시각을 가진 한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남의 돈 끌어쓰기 잘하는 우리 기업들의 뒤치다꺼리나 해야 할 형편이기 때문이다. 강부총리는 금융기관도 엄연히 시장에 참여하는 경제주체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시장주의자라고 주장한다. 「시장」을 「기업」으로 생각하는 인사가 우리나라의 경제부총리인 현실을 탓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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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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