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한국형 원전 UAE 수출] MB, 밀리던 상황서 왕세자에 6차례 전화 '막판 뒤집기'

[한국형 원전 UAE 수출] ● 긴박했던 수주전 막전막후<br>11월 초까지 프랑스가 유력<br>정부, 韓전총리 파견등 총력전… 이 대통령 '숨은 노력' 결실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건설 공개입찰에 한전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대표들이 26일 오후(현지시간) 특별기편으로 수도 아부다비에 도착, 왕실공항을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정지택 두산중공업 부회장,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정연주 삼성물산 사장, 안승규 한국전력기술 사장. /아부다비=손용석기자

SetSectionName(); MB, 밀리던 상황서 왕세자에 6차례 전화 '막판 뒤집기' [한국형 원전 UAE 수출] ● 긴박했던 수주전 막전막후11월초까지 프랑스가 유력UAE 직접방문 강행군 거듭 李대통령 입술까지 부르터 아부다비=문성진기자 hnsj@sed.co.kr 우승호기자 derrida@sed.co.kr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건설 공개입찰에 한전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대표들이 26일 오후(현지시간) 특별기편으로 수도 아부다비에 도착, 왕실공항을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정지택 두산중공업 부회장,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정연주 삼성물산 사장, 안승규 한국전력기술 사장. /아부다비=손용석기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돌이켜보면 한전 컨소시엄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에 성공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지난 5월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아부다비를 직접 방문한 후 프랑스의 우세로 기울었고 11월 초에는 프랑스 쪽으로 사실상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 같은 열세는 결국 뒤집혔고 여기에는 수주지원 외교를 펼친 이명박 대통령의 '뒷심'이 큰 위력을 발휘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1박2일간의 UAE 출장 동안 강행군을 거듭하며 수주전에 총력을 기울인 나머지 입술까지 부르텄다. 여기에다 세계 초일류 수준으로 성장한 한국의 원전기술이 제대로 인정받으면서 자칫하면 프랑스에 돌아갈 수도 있었던 400억달러의 대형 원전 프로젝트 수주가 대한민국의 품에 오게 됐다. ◇11월 초까지 프랑스가 유력= UAE 원전건설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미국과 프랑스ㆍ일본 등 전세계 원전 강국이 총력전을 펼쳤다. 원전 4기 건설에 총 400억달러(약 47조원)라는 천문학적 수주규모에다 중동 지역 최초의 원전 발주라는 점에서 사우디아라비아ㆍ요르단ㆍ터키ㆍ카타르 등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시장이 걸려 있었다. 올해 5월에 시작된 '게임'은 시간이 흐르면서 한전 컨소시엄과 프랑스 아레바, 그리고 미국 GE-일본 히타치 컨소시엄 등 3파전으로 좁혀졌고 막판에는 한국과 프랑스의 맞대결로 압축됐다. 그러나 5월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아부다비를 직접 방문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간 힘의 균형은 급격히 프랑스 쪽으로 쏠렸다. 세계 원전시장의 24%를 차지하는 프랑스의 기세는 무서웠다. 원전 수출 경험이 전무한 한국과 비교할 때 표준형 원전을 보유하고 최근 수주실적도 가장 많은 프랑스로 UAE 측이 사실상 기울어졌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프랑스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아부다비 방문과 더불어 국가 차원에서 총력을 쏟았다. 현재 아부다비에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분관을 건설하는 13억달러 프로젝트가 실행되는 등 프랑스의 압박은 강력했다. 여기에 UAE는 독립 직후부터 프랑스와 경제뿐 아니라 국방ㆍ외교 분야에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우리는 실로 무기력하고 왜소해보였다. 급기야 11월 초에는 프랑스로 원전 프로젝트를 줄 수밖에 없다는 UAE 측의 간접 통보가 한국 정부에 전달됐다. ◇MB '막판 뒤집기' 위력= 11월 초 이렇게 UAE 원전이 프랑스 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뒷심이 발휘됐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11월 초 당시는 UAE 원전 수주가 사실상 프랑스 아레바 컨소시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대통령의 원전 수주 지원외교는 이런 시점에서 본격화됐다. 이 즈음 이 대통령은 이번 입찰에 결정권을 쥐고 있는 모하메드 빈 자에드 알 나흐얀 왕세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설득했다. 이 대통령은 "UAE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大)산유국이지만 원유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수십 년 뒤의 포스트 오일(post oil) 시대를 지금 준비해야 하며 그 인프라, 즉 원자력과 첨단정보통신, 인력 양성의 상생협력을 한국이 제공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양국 정부가 이번 원전 프로젝트 협상을 계기로 그간의 자원중심 협력관계에서 벗어나 향후 50년, 100년을 바라보는 형제국과 같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협력을 확대해나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 대통령이 모하메드 왕세자에게 지난달 이후 여섯 차례에 걸친 전화통화를 통해 설득 노력을 펴면서 한국의 열세였던 수주전 양상은 중립, 그리고 우세 쪽으로 점점 바뀌어갔다. 여기에다 이 대통령은 외교채널을 통해 한국과 UAE 간 정부 차원의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제안하는 친서까지 보냈다. 이 대통령의 막판 결정적 승부수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를 지난달 중순 다시 UAE로 급파한 것. 이 대통령은 UAE에 방문 계획을 타진했고 덴마크 코펜하겐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돌아온 직후 UAE로부터 '방문해도 좋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한국형 원전 기술력의 승리= 한국이 원전 도입 50년 만에 첫 해외 수출이라는 쾌거를 거둘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힘은 지난 30년 동안 꾸준히 원전을 짓고 운영하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데 있다. 여기에 한국전력ㆍ한국수력원자력 등 참여기관이 입찰전담반을 구성해 공격적으로 나섰고 정부도 총력전을 펼치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점도 크게 작용했다. 이번 수출로 한국 원전은 세계 최고 수준의 운영능력과 가격경쟁력, 최단기 건설능력 등을 대내외적으로 다시 한번 인정받게 됐다. 특히 프랑스ㆍ일본 등 강력한 경쟁자를 제치고 원전 수주에 성공함에 따라 향후 추가적인 원전 수출 기대감까지 높아졌다. 원자력산업은 1950년대 원전이 처음 건립된 후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쳐 급성장했다. 그러나 1979년 미국 TMI, 1986년 체르노빌 사고에다 1980년대 중반 화석연료 가격이 폭락하면서 고속성장을 멈췄다. 유럽국가를 중심으로 반원전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원전산업은 침체기에 빠졌다. 하지만 한국과 프랑스ㆍ일본 등 세 나라는 원전을 계속 지었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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