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기업가정신이 창조경제 만든다] 1부 <4> 강력한 리더십

'추격자에서 시장 선도자로'… 오너 경영의 힘 발휘하게 하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1993년 독일의 한 호텔에서 사장단에 신경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질경영과 스피드 경영으로 요약되는 신경영을 통해 삼성그룹 전체의 체질을 변화시킨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사진제공=삼성그룹


삼성 오너 결단으로 반도체 성공 신화

현대차 MK 지휘로 글로벌 기업 도약


과감한 도전·추진력이 고성장 이끌어

'한국형 리더십' 글로벌 트렌드로 확산


#지난 2006년부터 기아자동차에서 근무한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 사장은 한국 기업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한국 기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의사결정 과정의 스피드는 그가 다른 나라 기업 어디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매력이다. 슈라이어 사장은 지난해 한국경영학회 통합학술대회에 참가해 "한국 기업 특유의 장점인 오너 경영이 글로벌 트렌드로 확산되고 있다"며 한국식 오너 경영을 극찬했다.

#한때 전세계 전자업계를 호령한 일본의 소니와 샤프 등은 이제 '종이 호랑이'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몰락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인 피치는 지난해 말 소니와 파나소닉의 신용등급을 정크(투기) 등급 수준으로 강등시켰다. 파나소닉은 'BB', 소니는 'BB-' 등급을 받아 정크 수준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제 이들 기업은 자금 수혈이 극도로 어려워졌고 결국 새로운 설비투자와 신사업에서 자금 문제에 부딪혀 생존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과감한 의사결정=일본 기업이 이처럼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수모를 겪은 것은 적자를 지속하면서 회생 가능성마저 의문시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3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일본의 소니 및 샤프, 한국의 삼성전자의 성과가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리게 된 배경을 다름 아닌 의사결정 과정에서 찾는 전문가들이 대다수다.


일본 전자업계의 경우 전문경영인이 회사 전체의 의사결정을 지휘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관료화된 의사결정 체계를 선호했다. 과감한 투자 결정 이후 불거질 수 있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틀에 박힌 과거 방식을 고집하며 세계적인 가전 명가를 지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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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성전자의 경우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경영 일선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중요한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각 계열사별로 전문경영인이 있지만 과감한 투자와 신속한 의사결정에는 이들의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이 같은 차이점이 일본 가전 업체의 몰락과 삼성전자의 비약적인 도약으로 나타난 것이다.

◇강력한 추진력=삼성전자의 성공을 되짚어 보면 오너의 강력한 추진력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일본이 전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고 있을 때 이 회장은 과감하게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이 회장의 신경영 역시 오너경영 체제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 회장은 지난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을 제창한 후 '질(質) 경영'으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은 한 경영진으로부터 "그래도 양(量)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라는 보고를 받고는 회의석상에 놓여 있던 티스푼을 테이블 위에 내던지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신임 회장의 이 같은 분노로 인해 신경영은 삼성 전반에 뿌리내리기 시작했고 삼성은 20년이 지난 지금 세계 일류 제품을 판매하는 일류 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오너 경영 체제가 아니었다면 삼성에 신경영은 없었고 여전히 일본 기업을 쫓아가는 회사에 불과했을 것이다.

현대차를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도약시킨 정몽구 회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 회장은 고(故)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현대차 경영권을 물려받은 뒤 곧 바로 품질 경영과 현지화 전략을 구사했다. 한때 현대차는 정 회장 취임 이전에 미국 토크쇼의 소재로 활용될 정도로 품질이 낮은 차량으로 묘사되기도 했지만 정 회장의 품질 경영으로 어느덧 글로벌 메이커의 반열에 올랐다. 또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한 현지화 전략으로 현지 고객의 요구에 대응하면서 한국의 현대차를 넘어 세계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효과도 거뒀다. 이 회장과 정 회장 등 오너 회장의 강력한 추진력이 회사를 비약적으로 키워낸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오너 경영 체제는 분명 단점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강력한 추진력과 과감한 결단력이 반영되면서 해외 경쟁 기업을 순식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막강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며 "초기 창업 오너의 경우 시장경제 체제 아래에서 많은 시행 착오를 겪었지만 2대ㆍ3대 회장으로 바통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톱 브랜드로 도약한 점이 이를 반증한다"고 평가했다.

◇오너 경영의 선전은 글로벌 광풍=한국 기업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이 같은 오너 경영 체제는 비단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일까. 세계적인 가구 전문업체인 이케아, 광섬유 기업인 코닝, 세계적인 금융기관인 JP모건, 글로벌 화장품 기업인 에스티로더, 자동차 타이어 제조업체인 미쉐린 등 전세계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바로 오너 경영 체제를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에스티로더의 경우 브랜드별로 고객과 상담하는 방법에서부터 화장하는 방법, 무료 샘플을 제공하는 방법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뉴얼을 정립해 전세계 화장품 판매량 증가를 일궈냈다. 이케아는 단순한 디자인과 조립식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같은 과감한 결정도 역시 오너들의 막강한 추진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S&P 500 기업 중 약 40%가량이 오너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오너 경영은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된 경영 시스템"이라며 "특히 유럽의 경우 상위 500대 중소기업 중 70% 이상이 오너 경영 체제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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