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산업계 도량형 통일 '고민되네'

산업자원부가 내년 7월부터 인치(inch), 평(坪), 근(斤) 등 비법정단위 도량형을 사용하면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후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적게는 수십 년, 많게는 수백 년 이상 전통적으로 통용해 온 도량형 표기를 갑자기 바꾸게 되면 소비자의 혼란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제품의 생산비용도 큰 폭으로 증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정부의 새로운 도량형 지침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소비자의 혼란을 최소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우선 전자 업계의 경우 당장 TV 크기 표시가 문제가 된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 모든 국가의 판매점에서 TV 크기가 인치로 표기되고 있는데 한국 업체 제품만 인치 표기를 억제한다면 해외 시장에서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또한 국내외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 인치로 사용하고 있는데 센티미터(㎝)로 표기할 경우 마케팅과 광고활동에 혼선을 줄 수 있고 홍보 비용 또한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어컨의 경우 냉방 능력을 표기하는 기본단위는 와트/킬로와트(W/kW)이며, 가정용 에어컨은 냉방 가능 면적에 대한 소비자 이해를 돕기 위해 '평형'을 사용해 왔다. 이에 따라 현재 에어컨 제품 카탈로그나 설명서 등에는 평형과 냉방능력(kW)을 함께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계량형 단위 변경 방침에 따라 냉방 면적에 대한 표기는 주택, 아파트 등의 면적 표기와 같은 제곱미터(㎡)로 바꿔 표기해야 할 상황이어서, 업계는 냉방능력에 대한 단독 표기, 혹은 면적을 제곱미터로 병행 표기할 것인지에 대해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냉방능력을 킬로와트나 제곱미터로만 설명을 해야 할 경우 소비자들이 큰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에어컨 등 일부 제품에서 쓰이는 넓이의 단위는 아직까지 제곱미터보다는 '평'이 널리 쓰이고 익숙한 만큼 제품 카탈로그, 설명서 등에 평 단위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고객과 기업이 국제 단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충분한 유예기간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 부동산 업계도 주택의 면적을 설명할 때 전통적으로 써 온 평 대신 제곱미터를 써야 해 평 단위에 익숙한 소비자들의 불편이 예상된다. 건설업계의 경우 분양공고나 주택 카탈로그 등에는 제곱미터 단위를 병행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워낙 제곱미터보다는 평 단위에 익숙해 있어 주택 광고물을 제작할 때 소비자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어떤 방식을 쓸 것인지 고심하고 있다. 공인중개사 업계와 시세 정보 제공업체들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각종 시세표에서 주택 면적을 제곱미터로 바꿔서 표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삼동 K공인 관계자는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단위를 제곱미터로 알고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느냐"며 "내년 7월부터 평 단위를 쓰지 못하게 한다고국민이 평생 써온 평 단위를 버리고 갑자기 제곱미터를 쓸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타이어의 경우 규격을 표시할 때 통상 휠의 크기인 림 지름을 표시할 때 '인치'단위가 사용되고 있다. 또 승용차에 사용되는 타이어는 단면 폭을 밀리미터(㎜)로 표시하지만, 중.대형트럭.버스 등에 사용되는 타이어는 림 지름뿐만 아니라 단면 폭도 인치로 표시하고 있다. 타이어 업계 관계자는 "현재 타이어 규격 표기는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정한표기법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림 지름을 인치로 표시하는 것은 관련 규격 자체가 지수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타이어 업계는 이번 정부 발표대로 타이어 규격 표기를 바꿀 경우 현재 인치 규정에 맞춰 원료 배합.투입.생산.출고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불량제품이 속출하고 시스템상으로도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2천800여 개의 타이어 규격을 갖춘 한국타이어의 경우 규격 표기를 바꾸면1만 개 이상의 몰드도 바꿔야 해 엄청난 몰드 제작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내수. 수출용을 별도 생산해야 하는 '낭비'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타이어업계 관계자는 "타이어에서 쓰이는 인치는 국제적으로 공용되는 표기법"이라며 "국제경쟁력 측면에서 국제 규격에 따라야 하며, 외국의 사례를 파악해 국내에서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류도 옷 사이즈를 다양하게 표기하고 있어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남성 정장의 경우 이탈리아 스타일에는 이탈리아에서 쓰는 사이즈 표기법을, 영국 스타일에는 영국 표기법을 적용하고 있어 단일화시키는 방법도 마땅찮다. 패션 업계 관계자는 "허리 사이즈의 경우 이미 제품에는 센티미터 단위로도 표시하고 있어 업체에는 큰 혼란이 없겠지만, 고객들이 센티미터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어 매장에서 한동안은 인치로 설명해줘야 하는 불편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을 판매할 때 흔히 이용된 '돈', 보석의 단위로 쓰인 '부' 등의 단위도 이제 쓸 수 없게 돼 관련 업계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금은 매장에서 돈과 그램(g) 단위를 함께 설명해야 하는 곤란함이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워낙 소비자들이 돈 단위에 익숙하기 때문에 돈 단위가 아닌 그램 단위로 제품이 제작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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