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베스트셀러 확대경]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위선 꼬집기

■ 고슴도치의 우아함 /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아르테 펴냄


'칸트의 글은 정말 위대한 글이고, 나는 그 증거로 자두 테스트를 멋지게 통과하는 그 글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 자두테스트는 그 기막힌 명증함 때문에 사람을 놀래게 한다. 그 힘은 보편적 검증력에서 나온다. 즉, 과일을 깨물면 마침내 사람은 이해한다는 것이다…(72페이지)' 내용만 언뜻 보면 아주 어려운 철학서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엄연히 소설. 그것도 지난해 8월부터 프랑스에서 무려 30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1위는 총 54주)에 오른 인기 소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8월 말에 출간돼 10월 첫째 주 한국 출판인회의가 집계한 베스트셀러 9위에 올라있다. 현재까지 프랑스에서는 60만 부 이상 판매됐고 국내에서도 5만 부 이상 팔렸다. 철학 전공자에게도 어려운 마르크스의 유물론, 칸트의 관념론 등 서구 철학 사상을 예술과 서사로 다시 담아낸 이 책의 인기 비결은 뭘까? 지난 1일 책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저자 뮈리엘 바르베리(38)의 대답은 "자신도 도무지 모르겠다"였다. 그는 집필을 끝내자 마자 심리학자인 남편에게 책의 검토를 부탁했다고 한다. 남편의 대답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텍스트가 너무 어렵고 흥행 공식을 안 따랐기 때문에 판매는 잘 안 될 거야." 이런 흥행 부적격 요소에도 불구하고 소설에는 아주 묘한 매력이 있다. 책에는 프랑스 지식인들이 사는 고급 아파트의 수위로 일하는 못 생기고 뚱뚱한데다 학교 문턱에도 못 간 아줌마 르네가 등장한다. 그는 무서운 집념으로 독학해 마르크스와 포이어바흐를 논하는 지식인이 된다. 그 아파트 6층에는 대충 공부하지만 늘 1등을 놓치지 않는 천재소녀 팔로마가 산다. 저자는 두 명의 주인공을 통해 여전히 문화적 엘리트주의가 지배하는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위선과 이중성을 넌지시 꼬집는다. 학벌 중시가 거의 병적 수준인 우리나라의 지식 사회와도 묘하게 겹친다. 저자는 기자 간담회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독자들이 책에 공감하는 이유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가면을 쓰고 싶다는 유혹을 받기 때문일 거예요.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르네와 팔로마의 냉소와 풍자는 사회를 향한 대중의 거침 없는 비판의 목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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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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