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9월 9일] 고착성을 끊어야 진정한 기업인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다. 빼앗긴 주권이야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과 함께 바로 되찾았지만 식민지 지배기간에 일제가 우린 민족에 주입시킨 민족적 열등감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일본에는 절대 질 수 없다는 한국인의 오기가 이를 말해준다. 조선을 합병한 일본은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사업에 착수했다.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인'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 책에서는 고착성(固着性)을 조선인의 주요 특성으로 들고 있다. 저자인 다카하시 도루는 조선인의 사상적 고착, 문화적 고착, 정치적 고착을 각각 배타적 주자학 추종, 흰 옷 고수, 통일 신라 이후 김ㆍ왕ㆍ이씨 세 왕조에 대한 무비판적 복종에서 찾고 있다. 이 정도로 한심한 조선인이 문명세계로 나오기 위해서는 선진국 일본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교묘한 논리다. 조선의 많은 지식인이 '실력양성' 기간이 필요하다며 친일로 돌아선 데는 이 논리가 큰 역할을 했다. 고착성은 모든 문화권의 인간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특성인데도 불구하고 조선인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인 양 강변하며 후진성을 지적하는 논리에 말려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당화하며 억지로라도 좋아하게끔 프로그램된 동물이다. 고착성은 선진국ㆍ후진국 가릴 것 없이 모든 나라에서 발견되며 이 점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변화의 물결에 눈을 감다 시대의 흐름에 낙오하는 것을 토마스로슨 신드롬이라 하는데 이 역시 고착성의 또 다른 표현이다. 증기선의 보급과 함께 해상운송에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는데도 범선에 돛대를 더 달겠다고 고집하다 침몰한 토마스로슨호는 지금도 우리 주위를 항해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고착성과 싸워온 기업인들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칠흑 같은 어둠으로 앞이 보이지 않을 때조차 여태껏 누구도 실현하지 못했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가진 일군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수레에 대드는 사마귀같이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그들의 시도는 대개가 실패로 끝난다. 눈을 감으며 그들은 생각한다. "내가 쓰러진 것은 불가능한 것에 도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적절한 시기가 오지 않았을 뿐이었다"고. 하지만 똑같은 꿈을 가진 후배 기업인들이 등장해 앞서간 사람들의 사상적 시체를 넘고 넘으며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낸다.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가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기업인이 꼭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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