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글로벌 시각으로 대응하라
이기섭 ㈜한국릴리 부사장
이기섭 ㈜한국릴리 부사장
요즘 우리나라 경제문제가 심각한데 개혁 조급증이나 개혁 강박관념이 문제인지 아니면 이념적 정체성을 따져보는 것이 더 큰 문제인지가 관심을 끄는 현상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40여년간 정당간 이념적 차별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개혁을 통한 이념적 변화를 추구해보겠다는 시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미국처럼 공화ㆍ민주 양당이 번갈아가며 이념적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총체적 국익을 장기적으로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개혁이라는 목적이 숭고하다면 그만큼 추진방법은 더욱 섬세하게 진행돼야 공감대가 커진다. 가시적이고 과시적인 개혁일 경우 추진세력이 성급하기 쉽다. 개혁은 쌍방간의 참여가 중요하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잘 의식하지 못하는 국내 중심적인 협량한 사고방식과 태도를 깨닫는 일이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다 보면 ‘문제를 너무 한국식으로 접근하고 논의하는 습관’을 자주 본다. 많은 사안을 정쟁적 차원으로 다루고 역사발전을 자기 중심적인 시각으로만 보려는 경향이 심각하다. 이러한 문화적 습관은 여야 대립적인 상황에서 모든 문제를 누가 이기고 지느냐는 차원의 게임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모든 문제를 글로벌 시각으로 보는 습관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외환위기 이후 부쩍 강조되는 말이지만 생각과 말과 행동이 따로 놀고 있다. 예컨대 세대갈등,수도 이전, 정체성, 개혁, 노사 문제, 대통령의 지도력이라는 문제를 글로벌 시각으로 논의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첫번째로 한 일은 우리 축구선수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한국팀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월드컵에서 뛰는 국제팀 가운데 하나라는 자각을 갖게 했다는 점이다. 소위 글로벌 사고의 도입을 통해 선수 개개인들의 근본적인 사고전환과 태도변혁을 노린 것이다. 선수들간의 나이 대접은 경기력 향상과는 무관한 일이 아닌가. 개개인의 경기력과 경쟁력이 문제인 것이다.
한국형 경제발전 모델이라는 자부심이나 최단기간에 외환위기를 극복한 우리의 저력은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미래의 성장전략은 오히려 과거의 성공과 실패를 글로벌 시각에서 조망할 때 가능하다. 21세기의 글로벌 시대에 과연 우리가 살려야 할 자부심과 버려야 할 자부심은 무엇인지 우리의 저력에 대한 과소평가나 과대평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심각한 경기침체 국면에 뾰족한 해결방안이 안 보여 답답한 한숨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나 경제 외적인 문제가 더 불거지는 것을 보면 경제문제에 얼마나 정책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 의문이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글로벌 경제의 한 축이 된 우리 경제가 이제는 더 이상 냄비요리하듯 정부정책 목표대로 돌아가주지 않는다. 정부의 영향력이 갈수록 축소돼가고 있는 것이 21세기라는 말도 있다. 정책 담당자들은 글로벌 경제에서 우리의 위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살펴보면서 정직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글로벌 시각으로 경제의 근본을 점검하고 시장경제의 원리를 충실하게 구현하려는 기본적인 노력이 시급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여전히 소중하다. 부분적인 단기 부양조치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체질개선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창의적인 해결방안을 찾고자 한다면 더 이상 우리 경제가 이렇게 가면 좋겠다는 장밋빛 그림을 그리지 말아야 한다. 대외교역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는 해외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어떤 역할을 맡아주기를 기대하는지 즉 어떤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일이 더 현명한 일일 것이다.
우리 경제가 글로벌 경제에서 어떤 역할을 떠맡아야 하고 혼자 할 수 있는 일과 선진경제와 우리 경제가 파트너가 돼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찾아봐야 한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장으로 진출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이 우리 경제가 갖고 있는 강점을 접목시켜 아시아시장에서 장기적 성공을 추구해나가도록 궁리해야 한다. 왜 우리나라가 아시아시장 진출의 핵심 교두보가 되지 못하는가. 싱가포르나 일본, 그리고 미국과 같은 주요경제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일이 시급하다.
세계 11대 교역국이라는 위상에 맞는 시장경제를 만들어가는 데 이러한 교역여건을 만들어내는 것은 시급하다. 그 파급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각으로 문제를 보고 글로벌 시각으로 논의를 하는 문화적 습관이 우리의 앞날을 가름할 것이다.
입력시간 : 2004-08-01 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