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느 나라든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다. 획일적이라는 지적에도 한국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있다. 미국의 각급 학교도 '충성 맹세(The Pledge of Allegiance)'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군주제 국가에서는 국왕에 대한 축원으로 이를 대신한다. 영국의 '신이여 여왕을 보호하소서(God Save the Queen)'가 귀에 익다.
△일본에도 이런 게 있을까. 답은 두 가지다. '있다'와 '없다'라는 상반된 답이 모두 가능하다. 의미상으로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ㆍ天皇陛下 萬歲)가 국왕에 대한 축원에 가깝지만 일본의 어린 학생들은 이를 제창하지 않는다. 심지어 3군 통합사관학교에 해당하는 방위대학교에서도 '천황폐하 만세'를 공공연하게 외치는 법이 없다. 국가에 절대적으로 충성해야 할 사관생도마저 이 구호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군국주의 일본의 상징어이기 때문이다.
△구호인 '천황폐하 만세'는 권력투쟁과 침략을 위해 만들어진 상징조작이다. 막부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존왕양위의 기치를 내건 일본 서부지방의 유력번(雄蕃)인 사쓰마와 조슈의 개혁가들이 발명해내고 제국주의 침략기와 군국주의를 거치며 일본의 정신으로 고착화한 껍데기 구호에 불과하다. 문제는 침략 근성을 북돋기 위해 짜낸 허구적이고 광기 서린 구호와 함께 태평양전쟁에서만 2,000만명이 넘는 민간인과 군인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극우의 팽창과 살육이라는 관점에서 '천황폐하 만세'는 나치 독일의 '하일 히틀러'와 놀랍도록 똑같다.
△한국인들이 일본 국왕을 천황이라 통칭하지 않고 일왕(日王)으로 부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천황'이라는 단어는 국가의 발전과 단합의 상징을 넘어 침략과 수탈의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거의 잊혀져 가던 원한에 젖은 이런 생각을 A급 전범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 총리 다시금 일깨워줬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가 패전 이후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외쳐댔다. 애들이 보고 배울라. 침략과 수탈, 살육이 그토록 그리운지 모르겠지만 귀결은 뻔하다. 패망(敗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