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기업 쥐어짜더니 나라 곳간만 축났다] 장삿길 안 터주고 세금만 더내라… 본전도 못 건진 증세 고집

사업계획 못짤 정도로 경기전망 불투명한데

무차별 세무조사 급급… 투자·고용위축 자충수

국세청 소송 패소 늘고 잘못 거둔 세금도 급증

무리한 세정 부작용 속출


“유럽은 재정위기 와중에도 법인세를 낮춘다고 하고 투자를 유치하려고 난리인데 한국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어요.”

경제단체의 한 고위관계자는 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기업들이 내년도 사업계획을 놓고 갈팡질팡할 정도로 경기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한데 정부건, 정치권이건 기업들에 세금을 더 걷겠다고 혈안이니 투자유치나 고용창출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당장 국세청만 해도 내년도 정책목표의 하나로 ‘대기업에 대한 성실납세 검증 강화’를 꼽고 있다. 이는 결국 세무조사와 같은 행정력 동원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국세청의 올해 세무조사 추진실적은 1,264건인데 이중 377건을 대기업 및 대재산가를 대상으로 삼아 7,438억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이와 별도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국세청이 마련한 2014년도 재원조달계획을 보면 ‘특단의 노력’으로 총 1조3,000억원대의 세금을 추가 확보하겠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는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일선 세무사들은 입을 모은다.

탈세와 같은 불법행위를 근절하는 것은 세정당국으로서의 당연한 책무이지만 사정기관의 행정력을 과도하게 집행하면 선의의 피해자가 나기 마련이다.

지난 2011년 8.1%였던 국세청의 행정소송 패소율이 지난해 10.4%로 급등했다는 점은 무리한 세정집행의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세청이 2009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잘못 부과한 세금만도 총 2조5,000억여원에 달하는데 매년 증가세였다.


한 중견기업 재무담당자는 “대기업들이야 그나마 법무나 세무 팀이 별도로 짜여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그 밖의 기업들은 전담인력 등이 부족해 세무조사를 한번 받으려면 거의 일손을 놓다시피해야 한다”며 “더구나 세무조사가 오너를 표적으로 삼는다는 소문이 돌면 일단 투자계획은 올 스톱되고 경영진은 오너 방어에 몰두하게 된다”고 세무행정의 호된 경험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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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중견기업 경영기획 담당 간부는 “만약 경기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세금을 더 내라고 압박이 오면 기업 입장에서는 신규 투자에 자금을 쏟기보다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유동성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며 이는 이익잉여금 증가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부는 내년도 법인세수 중 신고분은 감소하더라도 세수 중 금융이자나 배당 등에 대해 부과하는 원천징수분이 올해보다 거의 4%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봤는데 이것은 주로 기업들의 예금·배당소득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 기인한다. 문제는 기업에 대한 세금 쥐어짜기가 행정기관의 일회성 세무조사 등에 그치지 않고 아예 세율인상과 같은 제도적 증세로 이어질 위험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야권은 법인세율 인상을 위한 증세법안을 여러 건 발의해 국회에 상정된 상태다.

여당은 아직 법인세 인상을 반대하고 있지만 법인세제 과표체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등에 대한 세율인상에 결국 정부와 여당이 합의해줄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런 시각의 단초는 정부가 중장기 세제개편 차원에서 현행 3단계 누진체계인 과표구간 및 세율을 2단계 이하로 단순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제공됐다.

이렇게 되면 현행 3단계 과표 중 기존의 중간세율 구간이 일부 최저 및 최상세율 구간과 합쳐지는 과정에서 최저세율이나 최고세율이 일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아직 어떤 방안도 구체적으로 검토된 바 없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다.

반면 해외 주요국들 사이에서는 법인세 인하가 추진되고 있다. 박종상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3월 발간한 한 보고서에서 “적어도 최근 20여년 간 선진국들에서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인하하는 움직임이 대세가 되고 있다”며 “영국 역시 1997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33%에서 31%로 낮춘 후 2007년 법인세 개편안을 통해 다시 28%까지 낮췄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본의 국경 간 이동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법인세율 인상은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해외자본의 투자유치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도 “전세계 어느 선진국을 봐도 야당의 주장처럼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법인세를 증세하는 곳은 없다”며 “만약 세수를 확보하려 한다면 불필요한 조세특례를 없애고 법인세 이외의 다른 세목들을 개편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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