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아름다운 붉은 악마

지난 4일 밤에 열린 한국과 폴란드전은 모처럼 온 국민이 혼연일체가 됐던 축제의 장이었다. 월드컵 출전 48년 만에 이뤄낸 감격의 첫 승. 그것도 2대0의 완벽한 승리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온 국민이 한마음 한몸이 되는 국민통합이 어떤 것인지 보여줬다. 특히 주경기장과 거리에서 붉은 티셔츠로 하나가 돼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대규모 국민응원단 '붉은악마'는 열광의 주체이자 애국의 상징이었다. 한국축구가 48년 만에 첫 승의 쾌거를 올린 4일 밤. 서울 세종로 일대에 10만 인파가 모인 것은 87년 6월항쟁 이후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Be The Reds' 를 차려 입은 12번째 한국축구 전사들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붉은악마들이 지르는 고함, 손뼉, 노래 소리가 4대문 안에 울려퍼졌다. 이들은 '응접실 소파에 놓인 감자(couch potato)'처럼 안락한 공간의 텔레비전 시청을 포기하고 인파로 혼잡한 대형 전광판 앞으로 몰려 더불어 모든 것을 즐기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밤11시께. 우리는 붉은악마들의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10만 인파로 가득했던 세종로 네거리에서 황선홍의 첫 골, 유상철의 쐐기 골이 터질 때보다 더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붉은악마 200여명이 세종로 네거리에 한 줄로 서서 아름다운 뒤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손에 술이나 음료수 등 먹을 것 대신 검정 쓰레기봉투, 빗자루, 집게 등을 들고 있었다. 10만명이 머물다 간 뒷자리를 깨끗이 청소하고 있었다. 붉은악마들 모두는 열심이었고, 모습도 밝았다. 그들은 몇 톤이 넘을 쓰레기들을 네거리 각 모퉁이에 쌓고 있었다. 아름다운 그 모습에 감격스러워 한동안 망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밤중 이들의 모습에서는 숭고한 아름다움마저 배어나왔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성숙해졌나"하는 뿌듯함과 붉은악마란 자생적 국민응원단이 보여주는 한국인의 아름다움, 우리 시민사회의 성숙도에 눈물이 배어나오는 것을 어쩌랴. 붉은악마들의 아름다운 뒤풀이는 세종로뿐만 아니라 대학로, 여의도 한강 둔치, 잠실 종합운동장, 그리고 각 지방 대단위 응원장에서 동시에 이뤄졌다고 한다. 붉은악마들의 이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국운(國運) 상승의 기운을 느껴진다. 물론 월드컵에서 한번 이겼다고 웬 국운 상승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운 상승이 뭐 별거인가. 4,800만 민족이 모두 신명 나서 하는 일마다 즐거우면 무엇인들 못 이루겠는가. 또 그것이 나라의 기운이 상승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용솟음치고 있는 기운은 바로 전국민의 한마음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러나 한창 6ㆍ13 지방선거라는 대회를 치르고 있는 우리 정치권만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들에게서 페어플레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선수들이 저마다 심판의 눈을 피해 교묘하게 상대방의 발목을 걸고, 옷을 잡아채 찢으며 난장판을 벌이는 형국이다. 그러면서 서로 상대방 반칙에 휘슬을 불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월드컵 열기에 파묻혀 지방선거 투표율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실제로는 관심을 보여달라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자조도 이해할 만하다. 온갖 지저분한 반칙이 난무하는 수준 이하의 경기에 대한 관전객의 외면을 탓할 수만은 없다. 정치권이 입만 열면 되뇌는 감격의 정치, 국민 대화합의 정치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치권은 48년 만에 한국축구가 첫 승을 올리던 4일 밤 아름다웠던 붉은악마들의 모습에서 '깨끗한 6ㆍ13 지방선거'의 첫 단추를 꿰어보기를 기대한다. 한국축구의 16강, 8강 진출을 기원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신정섭<건설부동산부장>기자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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