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그래피티, 미술관 밖 미술의 도전


뱅크시가 영국 런던 혹스톤 광장 화이트 큐브 갤러리 외벽에 그린 '혹스톤 하녀(Hoxton Maid)'.

몇 년 전 '뉴미디어 미술'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을 때 필자는 왜 뉴미디어를 대중적이라고 하는지 늘 의심스러웠다. 뉴미디어 미술은 소소하게는 기술적 어설픔으로부터 예상치 못했던 긴 감상시간, 앉을 자리 하나 없는 불친절함, 올드 미디어용 전시실, 파격적인 형식 실험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미술보다 훨씬 불편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이 무렵 작가 양아치가 미디어 아트 포럼에서 도발적으로 제기한 질문 "전기ㆍ전자가 배제된 미디어 아트는 가능한가."는 필자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어떤 예술이든 미디어를 사용하므로 이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처럼 들릴 법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 질문에서 올드 미디어 미술을 재해석할 힌트를 얻었다. 뉴미디어 미술은 대중적이고 올드 미디어 미술은 대중적일 수 없다는 주장은 이분법적 가정에 불과하다. 일상에서 만나는 거리 벽화들 필자는 지난 겨울 영국 런던에 머물면서 올드 미디어 미술인 그래피티(graffitiㆍ벽 등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 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의 대중성, 곧 통속성을 감동스럽게 재확인했다. 거의 최초의 예술이었던 벽화가 21세기에 '미술관 밖 미술'로 일상의 공간에 산재하고 있다. 성별도, 인종도, 경력도, 실명도 밝혀진 바 없으며 혹은 한 사람인지, 집단인지도 알 수 없는 뱅크시(Banksy)는 런던 곳곳에 그래피티를 그린다. 뱅크시는 이스라엘이 쌓은 팔레스타인 장벽에 평화의 염원을 담은 벽화를 그리는 등 저항적인 작품 활동을 펼쳐온 세계적인 그래피티 작가이다. 뱅크시와 유일하게 인터뷰한 '가디언 언리미티드'지는 그가 브리스톨 출신의 로버트 뱅크스라는 백인 남성이라고 했지만 그의 작품에는 신비주의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범법행위로 규정되는 그래피티의 특성상 뱅크시는 적발되지 않도록 더 빠르게 그리고자 했다. 위치 선정, 구도, 제작시간 등 철저한 계획에 따라 작품을 제작하다 보니 스텐실 기법을 이용한 독창적 작가 양식도 만들어냈다. 공격적인 풍자를 위해 쥐를, 발랄한 농담을 위해 원숭이를 즐겨 사용하는 이 작가는 이제 '뱅크시 투어'라는 관광상품의 주인공이 됐다. 필자가 그의 흔적을 찾아 '뱅크시 지역'을 방황할 때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은 육안으로는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경찰을 피해 진입이 어렵거나 숨겨진 곳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바래고 덧그리는 통속성의 미학 그러나 뱅크시의 그림이 미술관의 명작들과 같은 방식으로 감상되고 평가될 때 통속성의 혁명성은 이미 훼손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뱅크시의 홈페이지에 한 방문객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우리가 사는 곳 핵크니(Hackney)에 그림을 그만 그리세요. 형과 저는 여기서 태어나 평생 여기서 살았어요. 하지만 요즘 잘 나가는 여피들과 학생들이 이 동네로 이사 오고 있어요. 당신의 그래피티가 이곳을 쿨한 동네로 만들고 있나본데, 우리 같은 토박이는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세를 감당할 수 없답니다. 그러니 그래피티는 제발 딴 동네에서나 그리시지요.' 일상의 공간에서 삶을 이야기하는 그래피티가 칭송받고 보존돼야 할 명작으로 전환되는 순간 그림의 통속성은 사라지고 만다. 권위도, 규범도 넘어서 친밀한 일상의 공간에 생생한 삶의 목소리가 담긴 그림이 그려지고, 덧그려지고, 흐릿해지고, 다시 그려지는 과정 모두가 소중한 미적 경험의 대상이다. 그런데 지난해 서울 도심에 설치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쥐 도안을 대고 검은색 분무액을 뿌린 박정수 씨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뱅크시는 되고 박정수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래피티(graffiti)
벽 등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 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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