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김씨 살해 주범은?
정치부 김창익기자 window@sed.co.kr
정치부 김창익기자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이 진짜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있을 때 TV를 통해 이라크전을 봤다. 부시와 미국이 ‘석유’ 때문에 이라크를 공격했다. 그래서 부시와 미국을 싫어한다.”
AP통신이 24일 공개한 비디오 테이프에서 이라크에서 피랍ㆍ살해된 고(故) 김선일씨가 납치범들에게 한 말이다. 죽음에 대한 극단의 공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던진 말일 수 있다. 그러나 되씹어보면 이 말은 김씨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근본적 원인에 대한 절규다. 또 이라크인들이 부시와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도 일치한다.
부시와 미국이 안정적인 석유 확보를 위해 세계 2위의 석유 생산국인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9ㆍ11 테러는 이라크 침공에 대한 빌미를 제공했을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라크인들에게 부시는 김씨의 말대로 테러리스트며 침공자다. 이런 그들의 눈에 한국의 파병은 침략국인 미국을 돕는 ‘외세’에 불과하다. 파병목적이 전투병력 지원이냐, 재건 지원이냐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국지적인 문제다.
조선 말기 우리 땅을 유린한 일본이나 러시아ㆍ청 등이 자국군을 조선에 파병할 때도 명분은 ‘근대화 지원’ ‘조선 왕실의 안전보호’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해가 쉽다. 김씨를 납치ㆍ살해한 ‘유일신과 성전’의 “한국군은 이라크를 위해 온 게 아니라 저주받은 미국을 즐겁게 하기 위해 온 것”이란 말이 그들의 눈에 비친 서희ㆍ제마 부대의 모습을 대변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김씨 구명을 위해 줄곧 파병목적이 재건 지원이란 점만 내세웠다. 요점 파악도 안된 상황에서 변죽만 울린 셈이다. 그러면서도 김씨의 죽음에 대해 정부는 ‘최선을 다했지만 유감이다’라는 식이다.
김씨의 목에 칼을 댄 것은 이라크 과격단체지만 빌미 제공자는 요점 파악도 못하고 초동대응에 미숙함을 드러낸 노무현 정부고, 한 발 더 나아가 근본원인을 제공한 것은 뚜렷한 명분 없이 이라크 침공을 강행한 부시 행정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반미 감정이 또 거세지고 있다고 한다. 한미동맹의 틀 속에 국가안보를 의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반미’는 물론 위험하다. 그러나 한미동맹이란 포장 아래 근본 진실이 감춰지는 게, 어쩌면 진실이 감춰지는 것조차 모르는 게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부시와 미국이 싫어요”라고 말하면서도 죽음 직전에는 부시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한 김씨의 심정이 바로 한국의 현 상황이다. 진짜 유감이다.
입력시간 : 2004-06-25 1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