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회사채 대책 발표 일단 보류…시장 안정되자 속도조절하나

우량사 회사채 발행 실패<br>불안감 여전하지만 금리 하락 등 안정 기미도<br>"사기업 도우려 발권력 동원"… 한은 독립성 훼손 논란도 부담


금융당국이 회사채 시장 안정화 방안 카드를 일단 보류했다. 단칼에 회사채 시장 불안을 해소하려는 당국이 안정 기미를 보이는 상황에 따라 속도 조절에 나섰다는 해석도 나온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신제윤 금융위원장 등은 2일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회사채 시장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었으나 안건을 돌연 취소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서별관회의에서 회사채 시장 안정화 방안은 안건에 올리지 않았다"면서 "회사채 시장이 최근 조금씩 안정화되고 있어 상황에 따라 대책이 필요한지 등을 관련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이 대책을 최소화해 내놓는다고 해도 시장은 이를 회사채 시장의 불안으로 인한 당국의 개입으로 판단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회사채 시장의 경색심리를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도 최근 "이번주까지 시장상황을 살펴보고 결정할 것"이라면서 "정부로서는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규모로 대책을 내놓아서 추가 대책이 필요 없게끔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정? 불안정? 애매한 시장=당국이 섣불리 회사채 안정화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안정과 불안정이 혼재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양적완화(풀었던 자금을 거둬들임) 축소 가능성 발언 이후 회사채 금리는 급등했다. 3일 만에 0.30%포인트나 치솟은 것이다. 비우량에 속하는 BBB-등급 회사채 3년물은 충격이 더했다. 같은 기간 0.32%포인트가 급등해 9.13%를 기록했다.

그러나 시장은 안정세를 찾았다. 2일 현재 9.04%로 소폭 하락했다. 금융당국은 특히 국고채와 회사채 간의 금리차이가 벌어지지 않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위기가 심화할수록 안전자산인 국고채 금리와 상대적으로 위험한 회사채의 금리 차이를 뜻하는 스프레드는 커진다. 그러나 2일 현재 3년물 국고채와 AA-등급의 3년물 회사채의 금리차이는 0.65%포인트에 지나지 않는다.

2008년 회사채 시장 안정을 위해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시행할 때와 비교하면 차이는 두드러진다. 채안펀드가 발표된 2008년 11월24일 회사채 금리(3년·AA-)는 8.71%로 국고채 3년물 5.06%와 3.65%포인트 차이가 났다. 금융위 관계자는"당시에 비하면 역대 최저 수준인 금리차이여서 정부가 개입할 만한 명분을 찾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우량 기업도 회사채 발행에 실패하는 등 불안한 요소 역시 분명하다. 해운업계 4위인 SK해운(신용등급 A+)은 지난주 500억원 회사채 차환 발행에 나섰지만 수요자가 없었다. 결국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전액 인수하면서 일종의 당국 개입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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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건설·조선·해운 업종 등은 하반기 회사채 만기가 4조원을 넘어섰다며 정부의 지원을 바라고 있다. 이들 3개 업종의 잔여 사채도 28조원에 이른다.

내년 1ㆍ4분기에도 2조9,233억원, 2ㆍ4분기에는 3조1,072억원의 만기가 기다리고 있어 내년 2ㆍ4분기가 고비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전망이다.

금융당국과 정부가 채안펀드를 비롯해 회사채 신속인수제, 채권담보부 증권(P-CBO) 등을 계속 고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2001년의 회사채 신속인수제와 2008년의 채안펀드, 그동안 했던 P-CBO와 달리 광범위한 규모로 실행할 방침이지만 개입 시점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국은행 개입도 논란=정부로서는 회사채 시장 안정화를 위해 한국은행을 끌어들이는 것 또한 부담이 된다. 한은이 일부 사기업을 돕고자 발권력을 쓰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이다.

한은은 2008년에도 채권시장을 안정시켜 기업 자금조달을 돕고자 5조원을 지원한 바 있다. 금융위기로 기업들이 줄도산 위험에 빠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채권시장의 급한 불은 껐다.

현재는 상황은 과거와 다르다. 리먼사태 때처럼 한은이 기업들을 지원해야 할 만큼 경제상황이 심각한지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여전하다. 자칫 발권력을 쉽게 쓰는 선례도 만들 수 있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적으로 중앙은행의 준재정정책이 늘어나는 추세"라면서도 "한 번 발권력을 쓰면 앞으로 발권력을 써야 하는 부분이 무분별하게 많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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