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조상인 기자의 술술-미술] 살아서 못 팔면 죽어도 안팔린다

"값이 오를 작품을 사고 싶으니 곧 세상을 떠날 것 같은 원로작가의 작품을 추천해 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화가가 세상을 떠나면 그림값이 오른다'는 전제를 깔고 이처럼 문의한다. 그러나 작가가 죽는다고 해서 작품값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돈을 따져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린다는 사실이 망측할 따름이다.


작가의 사망과 그림값 상승을 연결짓는 것은, 더 이상 작품활동을 할 수 없어 작품 '공급량'이 제한되니 희소성이 커지고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논리가 작동한 결과다. 하지만 안 팔리던 작품이 작가의 작고 소식에 더 비싸게 팔리는 일은 없다. 미술시장은 그 특성상 공급보다 수요의 영향력이 더 크다. 애초 수요가 없을 경우는 공급량이 줄어도 가격은 낮은 수준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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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까지 산 파블로 피카소는 평생 1만6,000점의 작품을 남겼다. 국내 최고의 그림값을 자랑하는 박수근의 유작은 500점이 안 되고, 운보 김기창의 전작(全作)은 4,000점 정도인 것과 비교할 때 피카소의 다작(多作)은 엄청나다. 즉 작품 수가 적어야 비싼 것은 아닐뿐더러, 도리어 일정량 이상의 작품 수를 확보해야 꾸준한 거래로 지속적인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원로작가의 타계보다는 오히려 전성기 작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요절이 그림값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 작가의 요절은 작품에 이야기거리를 더해주므로 프리미엄이 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작가 생전에 왕성한 작품 매매가 있었거나 미술관급 개인전 정도의 이력이 있어야 한다. 39세에 요절한 근대화가 이인성은 1935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받으며 천재로 불렸다. 48세에 세상을 떠난 현대미술가 박이소는 생전에 베니스비엔날레, 에르메스미술상을 휩쓸었고 사후에 삼성미술관 로댕갤러리, 아트선재센터 등 유력 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다. 안타까운 죽음이었지만 이쯤돼야 '인정받는 요절'이다.

그림값에는 이름값이 비중있게 작용하기 때문에 존재감 없는 작가의 죽음은 망각을 재촉할 뿐이다. 작가 사후의 관리 소홀로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작품성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작가의 스타성에 의존한다면 작가 사망 후 작품의 가치도 별이 지듯 떨어질 위험이 크다.

한편 임종이 임박한 원로는 작품 활동을 못하는 상황이 대부분이기에 작가의 생사 여부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천경자 화백은 건강 악화로 작품 활동을 않은 지 10년도 넘었다. 지난 10년간 천경자의 그림값 추이는 219%의 가격상승률, 즉 10년새 2배 이상 올랐다. 건강악화설로 작품 구매심리가 커진 탓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공급과 상관없는 수요증가가 꾸준히 가격을 끌어올렸기에 작가의 타계 소식에 작품값이 극적인 급등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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