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4월 09일] 운과 친분

각자가 인생에서 운을 느끼고 접하는 사례들은 실로 다양하다. 출세운, 금전운, 관운 등이 손쉽게 오르내리기도 하고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불운도 있다. 운은 다분히 추상적인 기대심리라서 그저 마음가짐일 수 있다. 누구에게나 행운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갖게 하기도 하고 삶을 이어주는 힘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운을 원하는지 마치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건처럼 삼태기로 행운을 퍼 드린다는 노래가 히트하기도 했다. 한편 친분은 어머니 태 속에서부터 시작되는 운명적 혈연과 후천적 지연ㆍ학연, 그리고 사회적 활동에서 얻어지는 많은 인연들이라 할 수 있다. 운과 친분은 상호 연관성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지만 개인의 희생이나 노력 없이 우연하고 손쉽게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일확천금ㆍ한탕주의는 운을 좇는 대표적 사례이고 삼성의 편법승계 논란은 부자 간 친분 때문에 발생한 대표적 사례이다. 사회가 노력이 아닌 운과 친분에 의해 좌우된다면 그 사회는 곧바로 파멸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경계한다. 따라서 사회가 운이나 친분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운과 친분이 경쟁력이 되는 산업 분야가 있으니 걱정이다. 설계ㆍ창작 아이디어를 작품의 품질로 삼아 작품을 구매하지 않고 입찰에 부쳐서 운 좋은 사람이 하도록 돼 있다. 이 제도는 우수하고 독창적인 건축 디자인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 일단 금액이 정해져 있으니 설계는 최대한 간단하게 빨리 완성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자랑삼아 하고 있는 건축설계ㆍ창작ㆍ디자인의 발주제도이다. 민간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발주자나 건축주는 대부분 개별 친분이 있는 사람이나 저가로 설계할 사람을 선정한다. 결국 건축디자인의 공공시장은 운으로, 민간시장은 친분으로 설계자가 선정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40여년간 걸어온 근ㆍ현대 건축물 만들기의 주류와 근간이다. 건축과 도시 경쟁력이 아직까지 중진국 수준을 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운과 친분으로 얻어지는 건축물의 디자인과 설계로는 세계와 경쟁할 수 없다. 오로지 건축 디자인과 기술력의 품질만으로 생존할 수 있는 경쟁체제의 확립이 시급하다. 운과 친분에 의한 발주체제는 빨리 청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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