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외환위기 그후 10년] (8)혹독했던 금융구조조정

<제2부> 구조조정의 빛과 그림자<br>公자금 他국가 2배투입 "고강도 수술"<br>금융기관 800개 줄고 은행원 1만7,942명 실직<br>M&A통해 외형 확대·BIS비율 13%대 성과 불구<br>대출 가계로 편중·저축銀 부진등 후유증도 속출

시중 대형은행 강제합병 등 대대적인 금융권 구조조정 작업이 진행 중이던 지난 98년 9월 이헌재 당시 금감위원장이 서울 명동성당 내 금융노련 천막농성장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다.


98년6월29일 오전 금융감독위원회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새벽부터 내외신 기자들이 몰려와 취재 경쟁을 벌였고 동향을 파악하려는 은행 직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27일부터 이틀간 야근에 들어갔던 금감위 구조개혁기획단도 초긴장 상태였고 상황실은 퇴출은행의 현황 파악에 진땀을 빼는 모습이었다. 이미 전날 저녁에 퇴출이 예정된 은행의 본점과 전산실 등에 인수팀을 보냈는데 해당 은행의 직원들이 열쇠를 갖고 잠적하거나 노조원들과 충돌을 빚는 바람에 대처 방안을 묻는 전화가 쇄도했기 때문이다. 퇴출은행의 직원들이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결국 이날 오전 이헌재 금감위 위원장은 자기자본비율(BIS)이 8%에 밑도는 12개 은행 가운데 동화ㆍ동남ㆍ대동ㆍ충청ㆍ경기은행 등 5개 은행의 퇴출을 공식 발표했다. 불사(不死)신화에 젖어있던 은행 퇴출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이른바 ‘6ㆍ29 은행 빅뱅’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공적자금 다른나라 2배 이상 투입”= 97년 경제위기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가 한꺼번에 닥쳤다는 점에서 체감 강도가 다른 나라의 외환위기보다 훨씬 강했다. 외환위기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과 97년 말 기준 33개 은행과 9개 종금사가 해외에서 단기로 빌려 쓴 돈 240억 달러를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됐다. 하지만 금융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정부는 회생 가능한 금융기관을 고른 뒤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처방책을 내 놓았다. 투입된 공적자금은 무려 168조원. 선택 받지 못한 5개 은행을 비롯해 16개 종합금융사, 6개 증권사 등이 98년 9월말에 끝난 1차 금융구조정을 통해 사라졌다. 국가가 긴급 수혈을 했던 만큼 구조조정은 필연적이었다. 상업-한일은행, 하나-보람은행, 국민-장기신용 은행이 합병되고 제일ㆍ서울은행은 해외 매각이 추진됐다. 1인당 영업이익(1억5,000만원)을 외국은행 수준(2억6,000만원)수준으로 맞추기 위한 인력 구조조정도 병행됐다. 어렵사리 성공한 노사합의를 통해 당시 9개 은행은 32%의 인력을 감축키로 했다. 9개 은행에서만 1만7,942명이 직장을 그만둬야 했던 것. 혹독하고, 신속하게 진행된 금융구조조정으로 2,103개의 금융기관은 1,329개(2006년 2월)로 줄었다. 경수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구조조정을 통해 투입된 공적자금을 재정비용에 견주어 볼 때 금융위기를 겪었던 국가에 비해 2배가 넘는다”며 “한국의 금융위기는 그 강도와 비용이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고 말했다. ◇동시에 이뤄진 진단과 수술= ‘비교적 성공적인 금융 구조조정이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비판 역시 만만찮다. 문제는 속도였다. IMF가 제시한 마감시간에 쫓겨 너무 빨리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바람에 국내외 금융시장의 혼란을 더욱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실제 종금사는 IMF와 공식 협약(12월4일)이 채 체결되기 전 퇴출 리스트가 내려왔다. 97년 12월2일 청솔ㆍ경남ㆍ경일 등 9개 종금사가, 10일에는 나라ㆍ대한 등 5개 종금사가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당시 금융구조조정을 맡았던 정부의 한 관계자는 “IMF의 첫 제시안은 받아들일만한 것이었지만 미국의 개입으로 강도와 속도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새벽 1시엔가 IMF로부터 퇴출 종금사 리스트를 받았고 불과 9시간만인 아침 10시쯤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특히 외형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바람에 부작용이 속출했다. 제일은행은 사모펀드인 뉴브릿지캐피탈에 ‘울며 겨자 먹기’로 매각됐다. 은행간 합병도 업무간 연관성이 없어 비효율적이었다는 비판도 있다. 과거 평화은행에 근무했던 금융권 관계자는 “퇴출된 5개 은행은 중소기업을 담당하며 산업 성장의 동맥 역할을 해왔다”며 “어느날 갑자기 퇴출시키면서 하나, 국민 등 소매금융만 전담하는 은행에 하나씩 넘겨주는 이상한 구조조정을 했다”고 말했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도 “금융구조조정의 성과는 있었지만 실적에 집착한 쇼도 있었다”며 “가장 대표적인 게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이라고 설명했다. 당시는 낯설었던 BIS비율 8%가 은행 부실의 판정 기준이 되면서 기업 자금줄이 한꺼번에 막힌 것도 문제점이다. 은행들이 BIS비율을 맞추기 위해 기업 여신을 연장하지 않은 사태가 곳곳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재경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당시에는 국제금융사회로부터 신뢰를 얻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할 판이었다”며 “BIS비율도 IMF의 제시 조건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은행 집중현상 등 부작용도= 이 같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친 뒤 금융 부문은 상당히 튼튼해졌다. 지난해 9월말 현재 국내은행의 BIS비율은 13.10%로 97년 말 7.04%에 비해 크게 좋아졌다.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외형도 성장, 세계 100대 은행에 국민ㆍ신한ㆍ우리은행 등 3곳이 포함됐다. 금융지주회사도 등장, 명실상부한 종합금융회사로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 구조조정의 후유증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김 교수는 “M&A 등을 통한 대형 금융기관의 출현과 외국자본의 활발한 국내 진출로 금융산업의 효율성은 높아졌다”면서도 “한국경제의 위험이 특정 부문으로 집중되는 새로운 과제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경제의 위험이 상호저축은행이나 가계대출 등 특정 부문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실제 상호저축은행은 97년 말 231개에서 지난해 2월 현재 110개로 반토막이 났다. 신협협동조합도 역시 1,666개에서 1,045개로 감소했다. 외환위기 이후 8조4,0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지만 경영구조는 개선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저축은행의 영업이익은 2003년 123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뒤 2004년에는 3,489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점점 악화되고 있다. 은행의 가계대출 쏠림 현상도 부작용 중 하나로 꼽힌다. 은행들이 단기 이익에 집착해 기업금융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담보 대출은 일반은행 총자산의 26.3%(2004년 말 현재)를 차지해 외환위기 당시(97년 말 11.1%)의 2배를 크게 웃돌고 있다. 오완근 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도 “대형 은행의 등장으로 은행 집중 현상과 정보 비대칭 문제가 심화되고 유망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을 위한 접근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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