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중동시장 '싹쓸이' 야심

[글로벌 시장 한국견제 심화] <br>유로화 가치하락에 가격경쟁력 커진 유럽업체<br>국내 건설업체 잇단 고배<br> 수주 목표 달성 힘들수도


지난 5월 초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 KOC가 발주한 해수 및 배수 주입 EPC(설계ㆍ구매ㆍ시공 일괄 수주) 공사 입찰에서 국내 건설사들은 또 한번 들러리를 서야 했다. 입찰 결과 영국계 EPC 업체인 페트로팩이 4억3,000만달러로 입찰, 1위를 차지했고 이태리계 사이펨이 2위를 기록했다. 국내 건설사들은 SK건설ㆍ대림산업ㆍGS건설 등 3개사나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3~5위에 그쳤다. 공사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국내 건설업계로서는 또 한번의 충격을 경험했다. 이미 4월 5개 패키지로 나눠 발주된 '대어(大漁)'인 아랍에미리트(UAE) 샤 가스 플랜트 입찰에서 삼성엔지니어링을 제외한 모든 국내 건설업체들이 고배를 들었기 때문이다. 남유럽의 금융위기에 따른 급격한 유로화의 가치 하락으로 우리나라의 텃밭이었던 중동 플랜트 시장에서 유럽의 공세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최근 중동 플랜트 업계에서 공격적인 저가낙찰로 한국 업체들을 위협하는 업체들은 영국계 페트로팩, 이태리계 사이펨, 스페인계 TR 등 모두 유럽계다. 이 가운데 사이펨의 경우 4월 UAE 샤 가스 플랜트 입찰에서 5개 패키지 가운데 무려 3개 패키지를 가져갔다. 올 초 이 공사의 '싹쓸이 수주'에 자신만만하던 국내 건설사들은 사실상 패닉 상태에 빠졌다. 입찰에 참여했던 A건설 플랜트 팀장은 "발주자 입장에서도 3개 패키지를 1개 회사가 시공하게 하는 것은 상당히 리스크가 큰 일 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사이펨의 독주를 허용했다"며 "중동 플랜트 시장의 분위기가 유럽 친화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유로화의 가치 하락에 따라 유럽 업체들의 이 같은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동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장점 외에도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B건설의 중동 플랜트 팀장은 "최근 중동에서 공격적인 유럽 업체들은 모두 시공의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라며 "시공의 경우 자재 및 장비 구입 등의 비용이 절감되면 원가 경쟁이 유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유로화 파동에 따른 파급 효과가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5월 현재 해외 수주금액은 총 320억달러로 이미 지난해 같은 기간(116억달러)의 3배에 가까운 성과를 올렸다. 일단 아직까지는 수치상으로 위기는 아닌 셈이다. 그러나 하반기 중동에서 국내 업체들의 수주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질 경우 올해 목표인 600억달러 달성이 힘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상반기 중동 플랜트 입찰 물량은 사실상 마감된 상태이며 7~8월의 비수기를 거쳐 9~10월께 다시 발주가 본격화될 예정이다. C사의 한 관계자는 "올해 초 세계 EPC 업체들의 본부장급 모임에서도 유럽 업체들이 한국 견제 의지를 공공연히 내보인 적이 있다"며 "유로화 가치 하락이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준 만큼 하반기에는 보다 적극적인 저가 공세가 이뤄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내 대형 업체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국내 주택 시장이 극도로 침체된 상황에서 '믿을 것은 해외뿐'이라는 생각에 너도나도 올해 해외 수주 목표를 높게 잡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삼성물산만 해도 올해 해외수주 목표치는 82억달러. 지난해 실적인 15억7,000만 달러 대비 무려 422%나 증가한 수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동 플랜트 수주가 급감할 경우 해외시장 확대 전략에도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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