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우리은행 민영화 늦는 이유

해묵은 논쟁거리인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 문제가 또다시 쟁점으로 대두될 것 같다. 여당 일각에서 정부가 대책 없이 우리금융지주를 매각하면 이것마저 외국자본에 넘어갈 우려가 있으니 은행법을 개정해서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현재 우리은행을 제외한 모든 시중은행의 외국인지분은 70%가 넘는다. 따라서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의 정부지분을 국내자본에 매각해서 ‘금융주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산업자본의 은행업 허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당초에 정부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한도를 엄격히 제한한 것은 대기업, 특히 재벌의 금융자본 지배를 막자는 것이었다. 재벌이 은행의 지배주주가 되면 은행돈을 제 돈처럼 마구 유용해서 은행이 부실화하면 그 피해는 국민이 지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밖에 재벌의 경제력 집중 및 공정경쟁 저해 우려도 주요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은행ㆍ기업은행 등의 소유경영을 누가 맡아야 하는가. 아마 독립된 국내 금융자본이 맡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 같다. 금융기관 경영의 노하우도 있고 책임경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직 은행을 인수할 만한 금융자본이 형성돼 있지 않다. 외국자본에 우리은행ㆍ기업은행마저 맡기는 것은 장점이 있지만 국민 정서나 금융주권을 내세운 반대의견도 적지 않다. 결국 차선책으로 재벌에 은행 소유경영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게 된다. 그러나 정부는 기본적으로 은행을 외국자본이나 재벌에 맡겨서 민영화하는 것보다 정부가 소유하고 관치금융으로 남아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정부ㆍ재벌ㆍ외국자본 중 어디에 은행을 맡기는 것이 바람직할까. 현재 외국인은 국내은행 지분의 10%까지 소유할 수 있으며 감독 당국의 승인만 얻으면 그 이상 소유도 가능하다. 반면 국내의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는 은행 주식의 4%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 소유 한도와 관련해 내국인은 외국인에 비해 역차별을 받아온 셈이다. 외국자본이 금융자본일 경우 국내은행을 소유하면 외자 도입은 물론 첨단 경영기법과 전문인력이 따라오는 이점이 있다. 이렇게 볼 때 금융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산업자본을 끌어들여 은행을 맡기자는 논리는 금융세계화의 진전 및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과는 동떨어진 주장 같다. 그러나 외국자본이 부적격 펀드나 자본 차익을 목적으로 들어오는 단기투기성 외국자본일 경우 국내 금융산업에 미치는 해악도 적지 않다. 이 시점에서 열린우리당의 일부 의원들이 왜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허용 문제를 제기하는지, 또 그러한 논의가 성공적인 민영화로 귀결될지는 분명하지 않다. 더구나 참여정부는 작은 정부보다는 큰 정부를 지향하고 공기업의 민영화도 지연시킨 실적을 갖고 있다. 우리은행의 민영화도 시한을 넘겨 지연시킬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 금융기관들에 투입한 막대한 공적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외국인이건 내국인이건 가리지 말고 정부가 출자한 은행들을 팔아야 한다. 그러나 은행 민영화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과거에도 정부가 은행을 국유화하는 데는 신속했지만 민영화는 매우 오랜 기간이 걸렸다. 정부는 겉으로는 민영화의 필요성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관치금융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것 같다. 한편 은행의 주인을 찾아주고 지배주주가 책임경영을 하도록 하는 것이 은행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산업자본, 특히 재벌의 은행업 진출을 허용하기 위해서는 대주주의 독단적 경영을 막을 수 있는 장치 및 금융기관의 건전성 감독이 강화돼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민영화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하며 민영화 이후에도 금융에 대한 정부의 불필요한 규제와 개입이 줄어야 한다. 알립니다 송현칼럼의 고정 필자가 이달부터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에서 이재웅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로 바뀝니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 미국 서던메서디스트대학원 경제학 박사인 이 교수는 성대 부총장, 한국금융학회 회장,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한국졍제학회 회장을 거쳐 현재는 성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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