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4월 27일] '자발적 퇴교' 선언한 대학 후배를 보며

지난달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는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나붙었다. 경영학과 3학년 김○○씨가 우리 사회의 학벌 만능주의, 무한경쟁 시대를 비판하면서 퇴교를 선언한 것이다. 당시 이 사건은 고대생들뿐만 아니라 네티즌 사이에서도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0여년 전 같은 캠퍼스에서 독재와 부조리, 성장통으로 나름대로 외롭게 방황했던 선배로서 스치는 바가 있어 적는다. 김 후배님은 대자보에 '우정도 낭만도 사제 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다'고 적으면서 오늘날의 대학에 대해 '자격증 장사 브로커'라는 표현까지 썼다. 좀 과격하지만 영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대학 안에서 이뤄지는 일이 정말 경쟁뿐일까. 우정도 낭만도 사제 간의 믿음도 정말 찾을 수 없을까. 혹시 매우 작지만 소중한 우정과 낭만, 사랑이 있는데 눈치 채지 못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 20여년 전 나 스스로도 도대체 대학에 낭만이 있기는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수없이 던져봤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열심히 읽으면서 밑줄도 쳐봤지만 답은 없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고모집'에서 막걸리와 깍두기를 먹으며 '민주주의'와 '민중'을 논하고 졸업이 가까워 오면서는 '취업 악몽'에 맘 졸이는 그 모든 순간마저 낭만이었음을 깨닫는다. 김 후배님은 '스무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고 했지만 '뭘 진정으로 하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은 나이가 오십이 돼도 답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은 법이다. 인생은 매 순간 답이 명확하게 주어지기보다는 오히려 풀기 어려운 문제의 연속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과의 인연ㆍ도움,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나가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뿐이다. 가장 불행한 것은 사회 전체를 부조리 덩어리로만 인식하는 일이며 자신의 적으로 보는 적대적 시선이다. 학교에 남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다른 후배님들은 행여 '특이한 자퇴선언'을 감행한 김 후배님을 동경하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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