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회사들이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인수 의사를 밝힘으로써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로 촉발된 저축은행 리스크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모습이다. 하지만 은행들이 몇몇 저축은행을 인수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일부 대형 저축은행발 부실폭탄은 제거하겠지만 다수의 소형 저축은행은 여전히 일촉즉발의 위험상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저축은행 PF 부실의 뇌관을 제거하기 위해 속도전을 펼치겠다고 천명함에 따라 금융당국의 다음 횡보에 대해 시장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부실 사전예방책 총동원=김 위원장의 속전속결식 업무스타일을 감안할 때 저축은행 부실에 대해서는 공격적으로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저축은행 부실 확산을 막기 위한 울타리가 처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PF 대출에 대한 충당금 적립 기준이나 사업성 심사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는 한편 부실이 드러난 PF 대출에 대해서는 자체 상각이나 시장 매각, 구조조정기금 매입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부실 확산을 조기에 막는다는 전략이 전개될 것으로 보여진다. 저축은행 대주주에 대한 압박도 예상된다. 유상증자나 자산 매각 등 자구 노력을 강력하게 요구한 뒤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강제 매각 등으로 과감하게 퇴출시킨다는 복안이다. 당국 입장에서는 이 참에 대주주 리스크를 해소하고 시장의 신뢰를 확보할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카드다. 이 경우 대주주의 자구노력 정도가 굿 컴퍼니(Good Company)와 배드 컴퍼니(Bad Company)의 잣대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저축은행 경영정상화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생존할 수 있는 곳과 생존하지 못할 곳을 먼저 가려내야 한다"며 "건전성 감독기준과 대주주 자구노력 등을 감안해 구조조정 여부를 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M&A 활로 터줄 듯=지난 5일 주요 금융지주회사들이 일제히 저축은행 인수 또는 지원에 대한 의사를 밝히면서도 조건을 달았다. 우리금융은 정부에서 순자산부족분을 보전해주는 조건으로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하나금융도 금융당국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할 경우 주주들의 반대와 경영진의 배임 문제 등을 우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의 이 같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금융지주가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하면 구조조정기금을 투입해 부실 채권 일부를 사들일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은행들도 절대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라며 "은행에만 모든 책임이 떠넘겨진다고 하면 은행들이 저축은행 인수에 기꺼이 나서겠다고 했겠느냐"고 말했다. 정부로서는 금융지주사들이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하면 구조조정기금을 당초 예상보다 훨씬 줄일 수 있는 상황이므로 일정 수준의 지원은 무리가 아니다. 현재 자산관리공사는 올해 저축은행 PF 부실채권 정리에 대비해 3조5,000억원을 배정해둔 상황이다. ◇예보 공동계정 급물살 탈 듯=현 시점에서 금융당국이 제시할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로는 '예금보호기금 공동계정 도입'을 꼽을 수 있다. 경영정상화에 실패한 소형 저축은행에 영업정지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리는 동시에 공동계정을 통해 고객 예금을 보호해줄 계획이다. 금융지주사들이 자발적으로 저축은행 인수에 나서겠다고 밝힌 만큼 정부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공동계정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예상된다. 공동계정은 저축은행 파산에 대비해 은행ㆍ증권ㆍ보험ㆍ저축은행이 예금보험기금 중 일정 부분을 공동으로 갹출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현재 예보기금에서 저축은행계정의 적자규모는 3조2,000억원에 이르며 다른 계정에서 끌어다 쓸 수 있는 한도도 9,000억원밖에 남지 않아 정부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공동계정 도입에 강력하게 반대했던 은행권은 지난 5일 시중은행 자금담당 부행장 회의에서 금융위원회의 공동계정 수정안을 수용하자는 입장으로 전환하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정부는 대형 부실 저축은행은 금융지주사에 넘기고 소형 저축은행에 대해서는 공동계정 도입을 확정하는 즉시 영업정지 등 처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