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내가 본 피카소전] <4>영화배우 오미희

"작가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br>시기별 대표작 차례로 보니 마치 여행하는 기분



국내 최대 규모의 피카소전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꼭 한번 찾아가 보고 싶었다. 대학 입학 준비를 하던 70년대 말 덕수궁에서 열린 피카소 전시회를 본 추억이 떠오른다. 미술 관련 학과를 전공한 터라 외국 여행을 떠날 때도 가능하면 미술관을 방문하는 편이다. 몇 해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피카소의 색다른 작품을 만난 기쁨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기대됐다. 개인적으로 예술가는 삶의 굴곡이 많을 수록 깊은 예술 세계를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피카소 역시 연인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슬픔을 겪고 아픔을 느끼면서 좋은 그림을 그렸다고 느낀다. 유난히 그의 생애에는 여성들의 입김이 많이 녹아있어 여성이 마치 피카소를 완성시킨 것 같다. 미술관에 들어섰을 때 먼저 만난 것은 1920년대 그림들이었다. ‘빨간 카페트 위의 기타’(1922년), ‘과일담는 그릇과 병’(1920년) 등 그의 초기 작품들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입체주의 전단계에 그린 ‘비둘기’(1912년), 고전주의로 넘어가던 과정의 그림 ‘우물가의 세여인’(1921년) 같은 그림은 피카소의 변화무쌍한 그림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피카소는 어릴 적 그림에 대한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를 향한 사랑을 그림으로 표현해낼 법도 하건만 오히려 그런 작품은 많지 않은 편이다. 피카소는 자신과 같은 화가인 아버지의 인도로 그림에 입문했지만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반항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피카소에게 아버지는 자신의 그림을 사랑해준 첫번째 관객이자 반드시 넘어서야 할 대상이었을 지 모른다. 아버지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는 알게 모르게 피카소의 그림 세계가 깊어지는 데 도움이 됐다고 믿는다. 피카소는 자신의 그림에 사적인 감정을 많이 녹여냈다. ‘도나 마르, 뒤집어진 얼굴’(1939년)같은 그림을 보면 분명 여인과 다툼이라도 벌인 후 불편한 마음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피카소의 분방한 사생활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여성 혹은 섹스를 통한 예술적 영감이 이토록 강렬한 터라 분명 그의 여성 편력은 무죄가 아닐까도 싶다. 게다가 기쁨, 슬픔, 분노 등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그림 속에 녹여낸 작품을 보고 있노라니 화가든 배우든 생각 혹은 사상이 중요하다는 진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생각이 자신의 인격을 만들 듯 좋은 생각으로 내 인생을 꾸려야겠다는 각오마저 들 정도였다. 3층에 들어설 때 전시 공간 한 켠에 마련된 그의 드로잉(drawingㆍ소묘)을 만났다. 나는 드로잉을 좋아한다. 드로잉은 마치 악기 소리를 모두 뺀 보이스만으로 만들어진 아카펠라 송 같다. 단순함 속에 강렬함을 간직한 게 바로 드로잉이다. 피카소의 제목도 없는 몇몇 드로잉 작품들은 화려한 채색의 그림보다 더 나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서울시립미술관 2층과 3층으로 이어지면서 7개의 시기별 대표작 140여 점이 전시된 이번 전시회는 마치 나를 여행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했다. 피카소의 그림과 마주한 내 위치가 멀어지고 가까워질 때마다 각기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가히 천재화가라는 칭호가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시기별로 나뉘어진 전시회에서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감상은 유난히 여성, 그의 연인들에 대한 묘사가 많다는 점이다. 수많은 그림 속에는 피카소가 7명의 연인들과 희로애락을 펼친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만약 피카소가 나를 만났다면 어떻게 그렸을까. 피카소의 그림 속에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니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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