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간판만 지주회사는 안된다

얼마 전 삼성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해 지배구조를 개선했으면 좋겠다는 공정거래위원장의 발언으로 재계와 언론이 들썩거렸다. 전임 공정거래위원장에서부터 계속 이어지는 공정거래위원장의 지주회사 선호사상은 사기업의 소유구조마저 정부가 획일적으로 강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순환출자가 복잡한 재벌들을 제외한 나머지 재벌들은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고 있거나 전환을 적극적으로 모색 중이다. 이미 올해에만 SKㆍ두산ㆍ금호ㆍCJㆍ한진중공업 등 상위 재벌들이 지주회사 전환을 선언했고 한화 등 몇몇 재벌들도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재벌 자체의 노력뿐만 아니라 주식시장도 이들 재벌 계열사의 지주회사 전환에 대해 주가 상승이라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지주회사 강요라는 비판을 무색케 하고 있다. 논란은 있지만 재벌들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재벌들의 지주회사 전환이 우리 경제시스템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현재 재벌의 문제는 적은 지분으로도 강력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고 기업 내 투자에 대한 왜곡현상을 일으키는 순환출자라는 지배구조 문제로 한정되는 측면이 있다. 공정위도 애초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지주회사 설립을 억제하는 정책적 족쇄를 완전히 풀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특히 급속한 세계화로 공정위도 기업들의 국내 독과점 문제나 경제력 집중 문제를 사실상 포기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주회사로 전환되는 재벌들을 자세히 보면 지배구조 개선이나 기업구조조정의 용이성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보다는 재벌 총수의 지배권 확대나 유지라는 이해관계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LG그룹의 경우 지배주주인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의 계열분리가 가장 큰 목적이었으며 지주회사 전환과정에서 지배주주는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지주회사의 지분을 50% 이상 확보함으로써 지배권을 확대했다. 또한 지주회사 전환을 발표한 SK그룹이나 한진중공업도 지배주주가 모회사의 지분을 약 15%만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지주회사 전환과정에서 회사분할 방식을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지주회사의 지분을 확대하고 다른 계열사를 지주회사 자금으로 지배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비용부담 없이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이로써 재벌 총수는 지배권을 확대할 수 있게 된다. 재벌들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돼 순환출자 문제가 해소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재벌 지배구조 문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경제력 집중 가능성만 높아지고 있다. LG그룹은 지주회사 전환을 지배구조 개선으로 자랑하고 다녔지만 결국 총수가 관련된 LG카드가 부실화하자 소유관계가 단절된 LG카드에 대한 자금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지주회사가 적은 지분으로 자회사를 지배하고 동시에 상장돼 있기 때문에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이익을 독점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쓰고 있다. 예컨대 LG의 경우 상장된 사업자회사에 배당은 적게 받으면서 브랜드 사용료, 경영컨설팅 비용으로 자회사 주주들보다 이익을 먼저 가져간다. 결국 재벌의 순환출자가 지주회사체제로 전환되는 것 자체가 지배구조 개선을 보장하고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재벌 총수의 이해관계에 따른 경영이나 지배권 확대를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고 계열사의 독립경영과 이해관계를 충분히 존중해주는 지주회사체제가 중요한 것이다. 또한 경제력 집중, 독과점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는 지주회사체제를 보완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와 시장은 지주회사라는 간판보다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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