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이건희(李健熙)회장이 삼성자동차 부채처리를 위해 2조8,000억원에 상당하는 삼성생명 보유지분을 내놓은 것과 삼성생명의 상장허용은 삼성그룹 후계구도와도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나타났다.李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지분은 26%. 이중 20%인 400만주를 사재출연 형식으로 삼성차 부채처리에 사용하게 된다.
이 경우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20.6%의 지분을 갖고있는 삼성에버랜드가 된다. 문제는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李회장의 장남 재용(在鎔)씨라는 것. 재용씨는 에버랜드 주식을 아버지인 이건희회장(4.7%)보다 훨씬 많은 31.4%를 갖고 있다.
李회장의 사재출연과 삼성생명의 상장은 삼성생명을 축으로하는 삼성그룹 전계열사의 지배구조가 재용씨를 정점으로 재편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李회장은 최근 몇년간 그룹 후계구도를 위해 재용씨에게 비상장사의 지분을 싼 값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별도의 상속절차없이 그룹 경영권을 이양하는 작업을 소리없이 벌여왔다.
李회장이 삼성차 처리문제와 삼성생명 상장을 서로「빅딜」한 것도 재용씨에게 그룹 경영권을 자연스럽게 넘기기 위한 장기포석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생명이 올초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98회계연도(97년 4월 1일부터 98년 3월 31일) 감사보고서에는 李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이 10%로 기재돼 있다. 에버랜드의 지분율은 2.25%에 불과하다.
30일 삼성그룹이 밝힌 李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26%로 무려 16%포인트나 증가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李회장은 자신의 삼성생명 지분율을 높이는 동시에 재용씨가 대주주로 있는 에버랜드로 하여금 삼성생명 지분을 충분히 확보하게 하므로써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는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재용씨도 그동안 에스원, 삼성엔지니어링, 제일기획등 주요 계열사가 증시에 상장되기 직전에 주식을 싼 가격에 매입했다가 상장후 이 지분을 팔아 시세차익을 남겼고 이를 바탕으로 애버랜드를 비롯한 그룹내 주요계열사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李회장이 삼성생명 주식을 내놓은 것은 기업부실에 대해 오너가 책임을 진다는 어려운 결단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그룹 후계구도를 강화하고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도 온전히 보전하는 다목적 전략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한편 삼성생명이 상장될 경우 제일제당그룹, 신세계그룹 등으로 나눠진 삼성가에 예상치 않은 재산분쟁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재할수 없다.
삼성생명의 지분구조는 李회장측외에 제일제당이 11.5%, 신계계가 14.5%를 갖고 있다. 삼성그룹과 제일제당그룹은 분가 과정에서 재산분배문제를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만약 삼성생명이 상장되고 李회장의 삼성생명 지분 20%가 시장으로 흘러나와 제일제당이 이 지분을 확보하거나 만에 하나 신세계와 지분제휴를 할경우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 정명수 기자 ILIGHT3@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