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7월 2일] 배출권거래제 안착하려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ETS)는 지구환경 분야에서 '공유재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제안한 핵심적 정책수단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4월 발효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총량제한 배출권거래제 등의 도입' 가능성이 언급되며 저탄소 사회 및 친환경 성장 정책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제도는 정책적으로 결정된 온실가스 배출권 총량을 기업들에 초기 할당하고 실제 배출량과의 차이만큼을 시장에서 거래하게 하는 제도이다. 제도의 기본 취지는 배출권 총량에 대한 최소한의 정책적 개입만으로 경제주체 스스로가 배출저감의 인센티브를 갖도록 하는 데 있다. 배출권 가격 안정성 확보를 배출권 가격이 형성되면 기업은 온실가스를 포함한 새로운 수익 및 비용구조에 따라 최적의 배출량과 더불어 저탄소 기술 및 공정에 대한 최적의 투자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저탄소의 규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투자 유발이라는 산업정책 요소를 동시에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배출권거래제는 '저탄소'와 '녹색성장'이라는 국정기조에 가장 부합한 정책수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 배출권 시장의 안착을 위한 제도적 환경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데 있다. 우선 배출권 가격이 저탄소ㆍ녹색성장의 유인체계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격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유럽연합(EU) ETS 시장은 시장 참가자 수(1만2,000여개 사업장)나 금융시장의 발전 정도에서 우리보다 유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배출권 가격의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에너지 투입물량에 기초한다면 우리나라 제조업 부문의 경우 설계방식에 따라 대략 250개에서 최대 500개가량의 사업장이 ETS 참가대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 가운데 상위 15~20개 사업장이 ETS 제조업 배출총량의 4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돼 시장 효율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배출권거래제의 이상적 실행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구조적 문제점으로는 전력시장의 가격규제 정책을 들 수 있다. 발전은 우리나라 이산화탄소 배출 총량의 37%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부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전력가격은 시장이 아닌 사회정책(가정용 전력)이나 산업정책(산업용 전력)의 일환으로 정책적 또는 정치적 고려에 따라 결정된다. 전력시장에 대한 규제가 현행대로 유지된다면 배출권 가격은 전력가격의 일부로 포함돼 실질적으로는 규제 대상이 될 것이다. 이 경우 가격에 따른 유인체계 내재화라는 배출권거래제 본연의 취지는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2009년의 경우 우리나라 전기요금의 평균 원가보상률은 92.5%에 머물렀다. 전력의 장기 탄력성(0.3~0.4)을 단순 적용해보면 이는 시장 원가를 반영하는 것만으로도 전체 전력 사용량의 2~3% 감소를 유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물리적 에너지의 수급에 기초해 시장이 형성될 수 있는 부문조차도 여러 가지 정책적 고려에 따라 가격을 자유화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한다는 것은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이에게 뜀박질을 시키려 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전기료 자유화 선행돼야 '녹색법'은 이미 저탄소와 녹색성장을 위한 주요 정책수단으로 배출권거래제를 명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종 연구단체와 학계에서의 논의가 정책수단에 대한 보다 발본적 비교와 평가를 차단한 채 예정된 결론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이론적으로 배출권거래제 자체는 정책적 자원(즉 온실가스)에 대한 인위적 시장 형성이라는 대담한 실험이다. 경험적으로 평가하건대 배출권거래제 도입의 가장 중요한 준거로 꼽히는 EU ETS가 검증된 최선의 시스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만큼 다양한 정책수단에 대한 열린 접근과 비판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온실가스 정책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저감의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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