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5월 28일] <1708> 루스트 사건


레이더 1만개에 요격전투기 4,000여대, 지대공 미사일 1만4,000여발. 냉전시절 소련 모스크바를 둘러싼 방공망이다. 대공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던 소련의 방공망이 뚫렸다. 1만6,055달러짜리 프로펠러 경비행기에 의해서다. 조종사의 신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19세 서독 청년 마티아스 루스트(Mathias Rust). 고향 함부르크의 비행클럽에서 조종기술을 익힌 그는 장난과 객기가 아니라 자신의 비행이 '동서 양 진영의 평화를 위한 가교가 될 것'이라는 소명감에서 모스크바행을 강행했다. 임대한 단발 세스나 경비행기로 핀란드 헬싱키공항을 이륙한 게 1987년 5월28일 낮 12시21분. 700여㎞를 비행하는 동안 소련의 미그23전투기와 마주쳤을 때도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1983년 대한항공 747 여객기를 격추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던 소련이 민간기를 공격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해서다. 소련은 작고 느린 경비행기를 결국 놓쳤다. 비행금지 지역인 모스크바 상공에 도달해 세 바퀴를 선회하는 여유를 보인 그는 오후6시43분 붉은광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루스트의 비행은 '나비효과'처럼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다. 사건 발생 이틀 만에 국방장관과 방공군사령관이 해임됐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투자를 늘려 방공망을 강화하자는 군부의 의견을 묵살하고 안보 책임을 물어 군 간부 2,000여명의 옷을 벗겼다. 보수적인 군부를 장악한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은 더욱 탄력을 받고 결국 독일 통일과 소련 붕괴로 이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만약 소련이 루스트 사건을 군비강화의 계기로 삼았다면 세계는 파국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19세 괴짜 청년의 비행과 강경 군부를 배제한 고르바초프의 선택이 냉전을 종식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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