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과학의 달」 30돌 기념 과기인 좌담회

◎“미래지향적 교육·정책 마련을”/모든 과제 단기간내 상품화 요구는 문제/「즐기는 연구」 할 수 있게 더 많은 지원을/가정·사회부터 인식전환해야 선진국 진입 가능서울경제신문은 과학의 달 3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국제적인 위상을 가늠하기 위해 각계의 우수한 과학기술인을 초청, 23일 하오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21세기 과학기술 선진국 진입을 위한 과학기술인의 역할」을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이날 대담은 최상삼 단장(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이 사회를 맡고 이종민 박사(한국원자력연구소), 유명희 박사(생명공학연구소), 홍예선 박사(한국과학기술연구원), 이수영 교수(한국과학기술원)가 참석했다.이종민 박사는 서울경제신문과 한국과학재단(사무총장 박진호)이 공동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첫 수상자이고, 유명희 박사와 홍예선 박사는 최근 과기처로부터 추천연구원으로, 이수영 교수는 우수연구원으로 각각 선정됐다.<편집자 주> □참석자 명단 이종민 박사(한국원자력연) 유명희 박사(생명공학연) 최상삼 단장(과기정책관리연) 홍예선 박사(한국과학기술연) 이수영 교수(한국과학기술원) ▲최상삼 단장(이하 최)=과학의 달 30주년을 맞아 전국에서 풍성한 과학기술 행사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과학기술계에 거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2000년을 2년 남짓 앞두고 21세기에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인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져 이를 주제로 잡았다. 이에 각 연구분야에서 뛰어난 활동을 벌이는 여러분들을 초청하여 대담을 갖는 자리를 만들었다.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한국과학재단이 제정한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받은 이종민 박사부터 각 분야별로 보는 과학기술인의 역할에 대해 말해 달라. ▲이종민 박사(이하 이종)=뜻밖의 상을 받아 대단히 기쁘다. 오늘 과기처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상패를 받는데 상패가 무거워 어깨가 축 처질 지경이었다. 상패의 무게보다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나는 물론 앞으로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받는 사람들이 대단한 명예로 자랑할 수 있도록 각계에서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 ▲이수영 교수(이하 이수)=우수연구원은 과기처가 연구실적이 우수하고 선진국의 첨단기술을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과학기술인을 선발하여 1년간 외국 연수기회를 주는 제도다. 오늘 과기처로부터 「우수연구원」이라는 타이틀을 받았지만 과연 「우수」라는 수식어가 걸맞는지 부끄럽다. 3루타 정도 친 기분인데 홈런을 친 것과 같은 수준의 칭찬을 받는 것 같아 과분하다. 앞으로 정말 홈런을 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 ▲유명희 박사(이하 유)=추천연구원은 창의적인 연구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과기처가 뛰어난 연구인력을 선발하여 3년간 안정적인 연구비를 제공하는 제도다. 이 추천연구원에 지원하기 위해 연구계획서를 쓸 때부터 기분이 좋았다. 나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하고 싶은 연구에 대한 계획서를 써 본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젊은 과학자는 자신의 청춘을 걸고 연구한다. 연구가 실패하면 청춘이 실패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자들이 하고 싶은 연구, 「즐기는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 앞으로 과기처 장관이 바뀌더라도 이 제도는 계속됐으면 좋겠다.(웃음) ▲홍예선 박사(이하 홍)=동감한다. 다들 하고 싶은 연구가 많지만 대형 공동과제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자신의 개성이나 색깔을 죽이게 된다. 이번에 추천연구원으로 신청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그동안 독일의 한 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교섭해왔는데 마침 내가 추천연구원으로 선정된데 이어 독일에서도 그 과제가 승인되어 매우 기쁘다. ▲최=나이 30이 되서 남들이 자신의 분야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이나 우수·추천 연구원은 땀흘려 연구하는 과학기술자들의 노력을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는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과학의 달 30주년은 우리나라 현대 과학기술의 역사가 30년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도 30년 전에 뿌린 씨앗이 지금 서서히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많다. 대학·연구소·기업을 둘러 보면 가끔 상당히 뛰어난 연구결과를 자주 볼 수 있어 깜짝 놀라게 된다. ▲이수=한국에는 안 망하는 과제만 있는 게 문제다. 정부는 성공하는 과제만 원하는 것 같다. 사실 추진한 과제가 모두 성공할 수 없다. 실패해도 평가자들이 연구자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대충 「성공」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모든 과제를 성공으로 몰아가려는 정부의 태도가 문제다. 실패하는 과제도 분명히 있어야 한다. 모든 과제에서 단기간에 상품화를 요구하는 것도 문제다. 모든 연구과제마다 국내 시장 규모와 수입대체, 수출 효과 따위를 계산할 수 없다. 지금까지 성공했다고 하는 과제들의 수입대체와 수출만 모두 합해도 우리나라가 이렇게 무역적자로 고생하지 않을 것이다.(웃음) ▲이종=과학기술은 본래 한 단어가 아니다. 영어 「Science & Technology」처럼 과학과 기술로 나뉘어야 한다. 정부는 과학기술을 한 단어로 보고 한 과제에서 「과학」을 위한 논문도 나와야 하고 「기술」에 따른 특허도 동시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학」 성격이 강한 연구와 「기술」 성격이 강한 연구를 나누어 추진해야 한다. 잦은 기획과 평가는 연구의 안정성을 해친다. 큰 과제는 3년 정도로 하여 안정적인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하고 한꺼번에 평가하는 것이 좋다. ▲최=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를 가보면 실패한 연구과제를 많이 본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연구비를 들이느냐고 물었는데 그들은 『우리는 문화에 투자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해 깜짝 놀랐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경제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지만 문화와 교육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다. ▲유=독일은 우리나라의 교육부와 과기처의 기능을 합친 「미래부」라는 행정부처가 있다. 우리 정부는 과학기술을 경제, 곧 현실을 위한 도구로 간주하는 경향이 짙다. 21세기를 앞두고 보다 미래지향적인 과학기술 정책과 교육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홍=과학기술에는 선천적인 소질이 중요하지만 가정과 사회의 분위기도 중요하다. 자식이 바이올린을 잘 연주하면 부모는 금방 음악에 소질이 있다고 과신하고 과외를 시키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자식이 과학기술에 소질이 있다고 판단하는 부모는 별로 없고, 있다하더라도 자녀의 과학기술 교육에 좀처럼 투자하려 들지 않는다. ▲이수=삼국지를 보면 「천시지리불여인화」라는 귀절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21세기를 앞둔 천시와 태평양시대를 앞둔 지리를 충분히 누리고 있다. 문제는 인화다. 21세기에 과학기술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자들이 연구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인화전략이 필요하다. ▲최=대부분의 우리 과학기술자들은 21세기에 한국이 과학기술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과학기술 선진국이 그대로 선진국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 선진국은 물론 과학기술사회 선진국이 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우리 가정과 사회의 바닥에 과학기술 문화가 흘러들고 또 깊이 스며들어야 한다.<정리=허두영·박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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