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이 설파한 '창조경영'의 요체는 아직도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기존 질서나 상식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끌어내는 '혁신적 파괴', 평면적 조건을 입체적으로 구성해내는 '융합의 시너지', 이 두 요소에 리듬과 박자를 부여하며 새 지평을 창조해내는 '고급 두뇌의 천재성'은 엄청난 에너지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임에 틀림없다. 최근 이 회장이 창조경영의 단초로 지목한 곳은 중동의 관문으로 변모한 두바이와 유럽의 새 보고(寶庫)로 재조명받기 시작한 발틱 3국(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ㆍ에스토니아)이다. 서울경제 취재진은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발틱 3국을 찾아 현장의 느낌으로 창조경영의 요체를 탐색하기로 했다. ‘Pardiet ldzu Samsung mobilos telefonus(삼성 휴대폰을 보여주세요).’ 발트 3국 중 한 곳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Riga). 지난주 초 서울경제 취재진이 찾아간 이곳에는 북구지역 특유의 서늘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왔다. 리가 시내 외곽에 자리한 전자제품 전문매장 엘코(Elco)에는 첨단제품을 찾는 현지인들로 북적였다. 엘코에 들어서자마자 기자가 알아듣기도 힘든 ‘삼숭’이라는 라트비아 발음이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를 돌렸지만 뒷모습만 보였을 뿐…. 발트 3국이 삼성ㆍLG 등 국내 기업 브랜드에 푹 빠졌다. 지난 1500년대 이후 다시 조성된 리가의 고풍스러운 도심에는 삼성과 LG의 광고가 넘쳐난다. 한국은 몰라도 삼성은 알 정도라고 하니 국내 기업 브랜드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리가에는 삼성이 닻을 올린 ‘창조경영’의 숨결이 곳곳에 묻어 있다. 글로벌 기업들보다 한발 앞서 진출해 장악한 유통망과 철저한 현지화 전략은 리가는 물론 발트 3국 전체에서 삼성을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브랜드로 만들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9월 리가를 방문한 자리에서 “발트 3국은 경쟁사가 주목하지 않지만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은 미개척 시장”이라며 “기존 시장보다 훨씬 작은 자원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발트법인은 올해 2억2,000만달러, 내년에는 3억달러의 매출을 올려 마케팅 법인이 아닌 판매법인으로 격을 높일 계획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모스크바에서 한숨을 돌리고 서부 유럽으로 향하는 시발점인 리가역. 역사 주변에는 핀란드계 고급 백화점과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자리잡고 있다. 국민소득이 7,034달러라지만 소비수준은 이미 1만5,000달러를 넘어섰다. 발트 3국의 특징은 높은 소비문화. 전자시장 규모도 지난해 15억달러에서 오는 2008년에는 22억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휴대폰 보급률 90%, LCDㆍPDP TV 시장도 지난해 4만5,000대에서 올해 12만6,000대로 성장하며 3배 가까이 늘었다. 삼성전자의 발트 3국 시장에 대한 첫번째 전략은 최소 투자에 의한 최대의 효과.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이후 현지에서 철수했던 소니를 교훈 삼아 삼성전자는 유통망 신뢰 확보에 전력을 기울였다. 확보된 유통망은 삼성전자가 울트라에디션, 40인치 LCD TV 등 경쟁사보다 한 차원 높은 프리미엄 제품으로 승부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실제 발트 3국에 판매되는 삼성전자 제품 중 57%가 프리미엄급이다. 임수택 삼성전자 발트 3국 법인장은 “미개척 시장의 유통망을 장악해 경쟁사들이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만들었고 새로운 프리미엄 시장을 창출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