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9월9일] 윌리엄 & 둠스데이북


윌리엄 1세. 프랑스 서부를 지배하던 노르만디공의 서자로 1028년 태어나 영국을 정복(1066)한 인물이다. 통칭 정복자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 1087년 9월9일 사망 전까지 주로 프랑스 영지에 머물렀지만 누구보다 많은 흔적을 영국에 남겼다. 대표적인 유산이 둠스데이북(Doomsday Book). 전국의 인구와 토지에 관한 조사서다. 색슨족의 반란을 평정한 직후인 1085년 시작됐다. 목적은 조세 강화. 정복지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실태 파악이었다. 두 권으로 묶인 둠스데이북에는 영주별 봉토와 삼림ㆍ방목지ㆍ공유지 면적, 쟁기 수, 자유민과 농노, 토지별 평가액과 신분별 토지 보유가 상세하게 적혀 있다. 정복 이전과 이후의 가치변동까지 조사했다. 조사 결과 토지소유 분포도는 노르만 귀족 50%, 교회 25%, 국왕 직할령 17%. 색슨족 소유 토지는 8%에 그쳤다. 노르만족의 토지가 많은 것은 통치에 앞서 재산부터 챙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복왕 윌리엄이 짠 경제질서는 중세와 근대를 거쳐 자본 형성과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조사서로는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꼽히는 둠스데이북은 경제사의 프리즘이자 이정표인 셈이다. 당시 한국은 어땠을까. 훨씬 정교한 조사가 있었다. 1933년 일본 도다이지(東大寺)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시대 민정문서에는 서원경(청주) 부근 4개 촌락의 지형과 전답 크기, 연령별ㆍ성별 인구는 물론 전출입 현황, 가축의 증감과 뽕나무ㆍ잣나무ㆍ호두나무 등의 숫자까지 파악돼 있다. 작성시기는 775년. 둠스데이북보다 310년 빠르다. 고도로 발달한 통치ㆍ조세행정이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는 얘기지만 기록은 거기서 멈췄다. 왜 더 발전하지 못했을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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