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유통공룡’ 전쟁터 되나

롯데, 우리홈쇼핑 대주주 변경 승인만 남아<BR>농수산홈쇼핑도 신세계 M&A설에 시달려<BR>방송위“유통재벌 배제 기조 붕괴될까” 고심


출범 11년차를 맞는 케이블TV 홈쇼핑 업체들이 ‘제 2의 격변기’를 맞고 있다. 롯데쇼핑이 업계 4위인 우리홈쇼핑 지분 53.03%를 4,667억원에 인수키로 하고 방송위원회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농수산홈쇼핑도 신세계의 M&A(인수합병)설에 시달렸다. 신세계는 최근 거래소 공시를 통해 “인수설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지만 언제든 주변 여건만 갖춰지면 홈쇼핑에 진출하겠다는 의사는 오래 전부터 가져 왔다. 유통 재벌들이 끊임없이 홈쇼핑에 입질을 가하면서 규제 기관인 방송위원회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 1994년과 2001년 두 차례에 나눠 홈쇼핑 채널을 선정할 때, 기존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공룡화’를 우려해 이들을 배제했던 정책 기조가 업체간 인수ㆍ합병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기존 업체들의 반발도 거세다. GS, CJ, 현대, 농수산 등 홈쇼핑 4사가 롯데의 업계 진출을 반대하는 정책건의서를 방송위에 제출한 데 이어 우리홈쇼핑의 2대 주주인 태광도 다음 주 중 같은 내용의 건의서를 제출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유통재벌 배제’ 기조 무너지나=94년 홈쇼핑 사업자로 선정된 한국홈쇼핑(현 GS)와 39쇼핑(현 CJ) 2001년 추가로 뽑힌 현대홈쇼핑, 우리홈쇼핑, 농수산홈쇼핑 가운데 현대백화점 계열인 현대홈쇼핑을 제외한 4개 사업자는 기존 백화점 중심의 유통업체와는 거리가 멀다. 선정 당시 방송위는 “일부러 유통재벌을 배제하진 않았다”고 밝히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공공재인 방송을 이용한 특정 업체의 손을 들어주진 않겠다는 기조가 깔려 있었다. 실제로 국내 홈쇼핑 시장이 급팽창한 데는 중소기업의 힘이 크다. 출범 당시 대기업 제조업체들이 홈쇼핑 판매를 꺼릴 때 홈쇼핑을 먹여 살린 건 원적외선 오븐레인지, 녹즙기, 자동차 코팅 세트 등 중소기업 제품들이다. 2001년 2차 사업자인 우리홈쇼핑과 농수산홈쇼핑은 각각 중소기업 상품 판로와 농수산물 유통망 확보라는 취지로 선정됐다. 신세계와 롯데는 모두 94년과 2001년에 홈쇼핑 사업신청서를 냈으나 탈락했다. 현대백화점 역시 당시에는 현대그룹과 계열분리를 한 지 얼마 안 돼 롯데ㆍ신세계와는 유통업계에서 비교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작았다. 그러나 롯데와 신세계 모두 2001년 이후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홈쇼핑 진출에 끊임없이 눈독을 들였고, 최근 롯데의 우리홈쇼핑 인수에 이르렀다. ◇케이블업계 판도 변화 올 듯=롯데가 제출한 우리홈쇼핑 대주주 변경 승인을 놓고 방송위는 아직까지 뚜렷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홈쇼핑 전체의 경쟁을 촉진해 업계 선진화를 꾀할 수 있는 반면 ‘백화점-할인점-편의점-인터넷몰-홈쇼핑’으로 이어지는 특정 업체의 ‘공룡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법 상 방송위의 결정 시한은 올 11월 초까지다. 롯데의 대주주 승인으로 불러올 또 다른 파장은 지역케이블TV방송국(SO)업계의 판도 변화다. 홈쇼핑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이상 사업 성공의 가장 큰 관건은 SO 확보. 롯데로선 우리홈쇼핑 인수 과정에서 티브로드와 감정이 틀어진 점, 홈쇼핑 경쟁사가 될 CJ와 현대의 견제 등을 고려한다면 추가 투자를 통한 SO 인수도 고려할 수 있다. 대기업이 장악하지 않은 마지막 홈쇼핑 채널인 농수산홈쇼핑 역시 기존 유통업체의 인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농수산홈쇼핑 측은 “인수ㆍ합병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일축했지만 홈쇼핑 시장이 대기업의 각축전장으로 변한 마당에 가능성은 열려있는 셈이다. 기존 SO를 갖고 있지 않은 대기업이 인수할 경우 역시 홈쇼핑 채널만이 아닌 SO에 대한 추가 투자까지 고려할 수 있다. 케이블업계의 관계자는 “과거 사업자 선정할 때 유통재벌을 배제한 정책 기조는 당시로선 합리적 판단이었지만 이젠 또 다른 시장 변화에 직면해 있다”며 “공익과 산업 논리 가운데 어느 한 쪽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게 방송위의 딜레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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