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가의 낮과 밤] 2. 회사 사냥꾼

 - 멀쩡한 기업도 파멸 일쑤미국의 대기업 경영자들에게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는 바로 지난 80년대였다. 특히 자산에 비해 주가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기업들은 회사 사냥꾼들의 공격 목표로 부각될까봐 한시라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분 피켄스, 칼 아이컨, 로날드 펠러맨 같은 회사 사냥꾼들이 활개치고 다닌 것도 바로 이 때였다. 그들은 어느 날 소리소문없이 특정 회사의 주식을 시장가격보다 웃돈을 주고 사겠다며 주식공개매수(TENDER OFFER)를 내놓았다. 매수가격은 시장 평균보다 보통 30∼60% 정도의 프리미엄이 붙기 마련이었다. 회사 사냥꾼들은 먼저 특정 회사의 주식을 비밀리에 거두어 들인 후 5%선에 근접하면 공개매수를 선언해 버렸다. 특정회사의 주식 보유가 5%를 넘어서면 증권당국에 신고해야 한다는 윌리엄법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공개매수 절차는 보통 회사 경영진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면서 투자은행가를 고용, 다양한 방어책을 전개하고 나섰다. 아무튼 80년대엔 경영진의 의사와 관계없이 회사가 다른 사람의 수중에 넘어가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80년대는 이처럼 적대적 M&A(인수 및 합병)가 성행할만한 충분한 토양을 갖추고 있었다. 우선 주식 가격이 실제 자산가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그리고 일부 기업들의 경영구조는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적대적 M&A는 바로 이런 토양에서 탄생했고 지난 84∼88년중 절정을 이루었다. 또 주주들의 얼굴이 대거 바뀐 것도 적대적 M&A에 유리한 환경이었다. 대기업 주식의 경우 보통 개인보다 기관투자가들의 보유분이 훨씬 많았고 기관들은 웃돈만 얹어주면 언제라도 주식을 팔아넘길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적대적 M&A에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든든한 자금력이었다. 80년엔 높은 이윤을 쫓아 시장을 떠도는 돈이 널려 있었다. 상업은행과 보험회사들도 회사 담보를 잡은 뒤 돈을 마음껏 빌려 주었다. 이 과정에서 정크 본드는 한몫을 단단히 했다. M&A 시장의 후발주자였던 드렉셀은 정크 본드를 무기로 삼아 수많은 기업들의 경영권을 탈취했다. 하지만 이들 회사 사냥꾼들은 단지 돈만 노리고 멀쩡한 기업들을 파멸로 이끈다는 점에서 거센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칼 아이칸이나 분 피켄스 같은 사냥꾼들은 회사 주식의 상당 부분을 확보한 다음 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적대적 합병을 피해가려면 프리미엄을 내고 주식을 되사라고 협박했다. 월트 디즈니같은 대기업들마저 이같은 그린 메일(GREENMAIL)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린메일은 불법이 아니라고 해도 경제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의회는 이같은 비판 여론을 의식, 그린 메일로 번 돈의 50%까지 세금을 물리기도 했다. 법인세나 개인소득세보다 훨씬 높은 세율이었다. 적대적 M&A로 곤욕을 치르던 대기업 경영진들은 투자은행을 고용해 적대적 합병에 대한 예방책을 마련했다. 극약 처방(POISON PILL)부터 백기사(WHITE KNIGHT)전략까지 다양한 전략이 제시됐다. 이밖에 합병 추진세력이 절대 다수의 주식을 확보하더라도 이사진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도록 이사 시차제를 채택하기도 했다. 미국의 데라웨이법원은 적대적 M&A에 대한 반대 여론을 의식, 기업측의 방어수단을 폭넓게 인정할 정도였다. 이같은 비난 여론과 경영환경 변화를 타고 적대적 M&A는 90년대 들어 급속히 퇴조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80년대의 적대적 M&A 열풍은 그 때까지 정신 못차리고 방만한 경영관행을 일삼던 대기업들에게 자기 변신의 기회를 제공했다. 사냥꾼들의 먹이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불필요한 자산을 제때 매각하고 경영 합리화를 통해 군살을 제거해야만 했다. 대기업 경영진들도 비로소 주주들의 이익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고 감량 경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데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같은 기업문화의 능동적인 변화야말로 오늘날 미국 기업들이 국제무대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이후 적대적 M&A는 크게 줄어들었으며 그 성격도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적대적 M&A가 벌어져도 단기차익을 노리고 합병했던 80년대와 달리 영업 이익을 개선하는 게 주요 목표였다. 미국의 힐튼호텔이 96년에 경쟁업체였던 ITT 쉐라톤을 상대로 적대적 M&A를 시도했던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힐튼은 취약한 호텔 체인망을 강화하기 위해 쉐라톤 호텔의 매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이루어진 대부분의 적대적 M&A처럼 힐튼측의 시도는 결국 성공하지 못한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시대상황이 그만큼 달라진 셈이다. /김성환 국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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