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월9일] 영국, 탄광 파업

1972년 1월9일. 광부들이 작업장을 떠났다. 정부가 3개월간 협상 끝에 제시한 7.9% 임금인상안을 거부하는 파업을 위해서다. 전국 289개 탄광, 28만여 광부가 모두 참여했다. 에너지의 75%를 석탄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한겨울 파업은 영국을 얼렸다.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고 공장의 기계도 멈췄다. 조업중단으로 임시 해고된 노동자가 2월 중순 120만명에 이르자 정부는 손을 들었다. 두자릿수 임금인상을 쟁취한 광부들은 2월25일 탄광으로 돌아왔다. 1921년 이후 51년 만의 전국규모 파업에서 얻은 승리는 광부들을 단결시켰다. 1974년 2월 재발한 파업에 맞서 신임투표를 단행한 히스 총리의 보수당 내각은 퇴진을 맛봐야 했다. 노조의 위세를 업고 구성된 윌슨의 노동당 내각은 예산의 48%를 실업난 해소에 쏟아부었다. 결과는 경쟁력 저하. 영국은 1976년 39억달러 규모의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처지로 떨어졌다. 긴축재정 속에서도 ‘국영기업체 직원’에 안주하던 광부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1984년. 2기 집권에 성공한 마거릿 대처 총리가 석탄민영화와 탄광 폐쇄를 추진하자 광부들이 들고 일어났다. 노조지도자는 ‘74년 투쟁’의 주역이었던 스카길. 1984년 3월 시작된 파업은 치열하게 펼쳐졌다. 결과는 1년을 버텨낸 대처의 승리. 대처에게 ‘영국병을 물리친 철의 여인’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은 반면 탄광은 쇠락기로 빠져들었다. 2001년 개봉작 ‘빌리 엘리어트’에 흐르는 탄광촌의 음울한 배경이 바로 이 무렵이다. 노조의 패배 원인은 두가지. 북해유전이 개발돼 석탄의존도가 35%로 떨어진데다 종전의 승리에 도취됐기 때문이다. 1972년 파업은 영광과 패배의 이정표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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